[안희진의 민낯칼럼]

[오피니언타임스] 과거 매관매직이나 계파정치, 정치적 논공행상의 흥정물에 다름없었던 ‘전국구’와는 의미와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현행 비례대표제 역시 아직 그 비리의 뿌리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는 정당 공천으로 선출된 직능 대표들이 현장과 직능을 대변하고 그것을 사회에 확산시키며 제도 확립과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치제도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정당이 과연 그럴 만한 사람을 잘 골라냈는지와 뽑힌 후에 과연 그들의 행보가 그러한가 하는 점이다.

나같은 소시민으로선 국회의원처럼 매력적인 직업은 없을 듯하다. 헌법기관이라는 법률적 지위와 권위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고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속물스럽게 말한다면, 국무위원을 불러내서 ‘이보시오. 장관! 예 아니오로만 답하시오!’ 이런 호통을 대체 누가 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면책특권을 방패로 하여 할 말 못할 말 다 할 수 있으니 막말은 아니로되(막말하는 이도 많긴 하다), 이 또한 ‘나꼼수적’ 권력이 아닌가. 세비야 일한 만큼 받는다 해도 국민 세금으로 수명의 보좌진을 거느리게 되니 이 또한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존경은 받지 않더라도 국회의원을 꿈꾸는 이들이 많은 것 아닌가. 다가올 20대 총선에서도 적게 잡아도 수천명이 여의도 주변에서 ‘나를 뽑지 않으면 나라의 손실이요, 반(反)역사’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할 것이고 한편에서는 ‘제발 뽑아달라’며 선만 닿으면 달려가 닭똥냄새 나도록 빌지 않겠는가. 하물며 그 ‘맛’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마르고 닳도록 여의도에 남아 있게 되길 원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국회©픽사베이

국회의원으로서의 본질은 다르지 않지만, 직능대표로서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비례대표는 지역구 의원과는 다르다. 달라야 한다. 조직이나 자금을 포함한 정치력 등 정치적 위상이나 배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특정하고도 분명한 기능과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직능대표에게 원하는 정치적 상징성과 정치적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정치적 역량의 표현방식이나 조직과 네트워킹, 정치적 행보는 지역을 대표하는 일반 국회의원과는 당연히 달라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지역구 의원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나쁜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 흉내를 내면서도 기능과 역할로서의 정체성만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역시 사정은 그렇지 않다. 본시 자신에게 맡겨진 직능대표로서의 국회의원이 아닌 보통 국회의원 노릇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직능대표 국회의원의 정체성은 정당 배경이 아닌 ‘현장’이 배경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신을 국회로 보낸 현장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일’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사람’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아픔’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욕구와 소망’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직능대표들은 일반의원들과 함께 입법활동, 계파활동, 특히 임기말 재선운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현장을 떠나게 되고, 일을 떠나게 되고, 사람을 떠나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정체성인 현장의 아픔을 잊게 되고, 욕구와 소망은 안중에도 없다. 직능대표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현장의 직능대표 아닌, 보통 국회의원 노릇만 하다가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성적표’를 들이대며 ‘이렇게 열심히 한 나를 다시 뽑아줘야 할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임기말 총선철에 나타나는 정체성 상실의 이 모습들이야말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비례대표 재선 불가’ 관행이 있으니 비례대표는 재선이 절대 안 된다거나 지역구 출마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나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다른 주제가 될 뿐만 아니라 지금 이 글의 본질도 아니고 핵심도 아니다.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337회 국회(정기회) 5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포커스뉴스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여!

요컨대 지역구로 뽑을 국회의원이 부족해서 당신을 직능대표로 보충한 게 아니란 말이다. 당신들은 분명하고도 확실한 임무가 있고, 기능과 역할이 있는데, 그것은 일반 국회의원들은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내년 4월이 되면 20대 국회의원이 탄생할 것이고,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낙선한 ‘전직’ 국회의원들이 수도 없이 나타날 텐데, 당장이야 김유신 장군의 말(馬)처럼 자신도 모르게 여의도 일대를 오가게 되겠지만,

원래 몸담았던 당신들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의정활동의 경험으로 현장을 바꾸는데 필요한 ‘역할’로서 원래 국회에 갔던 뜻을 살리며, ‘현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쩌자고 현장은 내팽개치고 렉싱톤호텔 커피숍에서 죽치고 있는가 말이다. 세상 거짓말 중에 최고가 전직의원의 ‘바쁘다’는 말이라는데, 제발 ‘현장’으로 돌아가 진짜로 바쁜 나날 보내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지역구가 신설된다는 소문이 도는 낯선 동네시장을 다니며, 외면하는 상인들을 억지로 돌려세워 증명사진을 찍어대는 어떤 비례대표 현역의원이 떠올라 써봤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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