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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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 내 친구 A는 33살 ‘딴따라’다. 그 동네(?)에선 제법 잘나가는 드럼연주자 겸 작곡가다. 몇몇 상을 받았고, 현재 동료들과 앨범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뚜렷한 직업은 없다. 작은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한다. 당연히 모아놓은 재산도 없다.

친구 B는 34살 ‘폰팔이’다. 태권도 4단이지만 현재 휴대폰을 팔고 있다. 이름 있는 체대 출신에 춤에도 제법 소질이 있었지만 결국 옆길로 샜다. 태권도 사범을 했으나 먹고살기 팍팍했고, 태권도장을 차리고 싶어도 돈 없는 처지에 언감생심이다.

친구 C는 34살 ‘무늬만 작가’다. 어릴 적부터 글을 썼고 각종 백일장을 휩쓸었으며,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 소설, 희곡 등 다방면에 재주가 뛰어났고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지금은 4개월에 120만원짜리 사회복지사 자격증 학원에 다니고 있다. 글쓰기는 포기한 지 오래다.

내 친구들은 왜 이렇게 됐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지난 9월2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에 취준생들이 모여 취업정보를 알아보고 있다.©한양대학교

원인을 살펴보자. 일단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 돈 안 되는 학과를 나왔고 돈 안 되는 취미를 가졌다. 남들 스펙쌓기에 열중할 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자업자득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아니다. 억울할 수도 있다. 젊을 때 잠깐 한눈판 게 대순가. 문학, 체육, 예술을 전공하면 다 손가락 빨고 살아야 하나. 수십년 한우물을 파도 답이 안나오는데 노력 부족, 자질 부족이라고 비난할 수 있나.

희망 없는 사회다. 젊은이들의 좌절감은 크고 깊다. “흙수저 물고 태어나 미래가 없다”고 자조하고, 헬조선이라며 신세를 한탄한다. 그럼에도 묵묵히 스펙을 쌓으며 제도권 진입을 시도한다. 스펙쌓기를 거부하고 마음껏 행동한 댓가는 비정규직이다. 서른 넘도록 제자리 못 찾은 미생들이 씁쓸한 증거다.

스펙쌓기는 뫼비우스 띠 같다. 몇몇 스펙은 회사에 들어가도 쓸 일이 없지만, 취업 바늘귀를 통과하려면 ‘있어 보이는 자격증’은 억지로 따야 한다. 수능 때문에 배우지만 평생 안쓰는 루트(√) A²B²C²과 비슷하다.

여대생 D는 25살 ‘취준생’이다. 명문대 4학년으로 취업의 돌계단을 차근차근 오르고 있다.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까지 어학 관련 자격증만 5개다. 인턴 경험도 2번이나 쌓았다. 그러나 몇몇 대기업 입사에서 고배를 마셨고,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기준이 없어 답답하단다. 얼마나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할지,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지 불안하다. 선배에게 주워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수집한, 대충 그려진 약도를 들고 나침반 없이 길을 찾아가는 셈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스펙쌓기©픽사베이

청년실업률은 최고 수준이다. 일자리를 차지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고만고만한 스펙을 쌓은 청년들은 한껏 꾸미고 면접을 보지만, 하루 수십명씩 상대하는 면접관이 던지는 행운의 주사위 숫자는 랜덤이다. 내게 기회가 올수도, 안 올 수도 있다.

단추는 어디부터 잘못 꿰어졌나. 왜 젊은이들은 한없이 방황하고 있나. 딴따라면 어떻고 흙수저면 어떤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수는 없나. 노력하면 해답이 보이고, 길을 걷다 지치면 가끔 쉬어가고, 우회로도 열려있는 그런 사회는 없는 걸까. 상식이 통하는, 출구가 보이는 사회를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박형재

 오피니언타임스 기자 

 전 세계일보 로컬세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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