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1일(현지시간) 터키 총선 개표 결과 집권 정의개발당의 압승이 확실시되자 앙카라 당사 앞에 모인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포커스뉴스

[오피니언타임스] 지난 1일 실시된 터키 총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었다. AKP는 49.5%의 득표율로 550석의 의석 가운데 317석을 획득했다. AKP가 정권을 4년 더 연장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한층 더 강화시키는 개헌안 추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AKP는 지난 6월 실시됐던 총선에서 15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의석 획득에 실패했었다. 이는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밀어부치려는 에르도안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랬던 터키에서 불과 5개월이 채 안 돼 국민들의 표심이 크게 변했다. AKP의 압승은 에르도안의 도박이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에르도안은 지난 4일 터키의 발전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의회는 개헌 의제를 우선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선 사흘 만에 개헌 추진에 시동을 건 것이다. 앞으로 터키에서는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를 막으려는 반대 세력 간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줄다리기가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인지를 지금 한마디로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6월7일의 1차 총선에서 11월1일 2차 총선까지 사이에 터키 유권자들의 마음이 바뀐 과정을 살펴보면 그 양상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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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터키에서의 변화는 공포라는 한 마디로 축약될 수 있다. 6월 총선에서 AKP가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친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의 세력 확산이었다. 에르도안은 이번 총선에서 HDP을 저지하기 위해 테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그는 우선 연정 구성 협상을 결렬시키고 소수 정부를 출범시켜 터키 정국에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와 함께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 PKK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면서 자신만이 터키를 테러로부터 보호하고 안정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부각시켰다.

6월 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던 쿠르드족과의 평화협상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AKP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평화협상을 헌신짝 버리듯 포기할 수 있다고 판단한 PKK 역시 터키 정부에 대한 무장공격을 강화했다. 테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계속 확대됐다. 지난 10월10일 1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앙카라에서의 폭탄 테러는 이런 불안을 극대화시켰다. 이날 테러가 쿠르드족과의 평화를 위한 집회를 겨냥한 것이었음에도 쿠르드계가 테러의 배후라는 주장 속에 쿠르드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1일 치러진 터키 총선을 지켜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참관단은 이번 총선이 언론 탄압과 폭력, 기타 안보에 대한 우려 등으로 얼룩졌다고 비난했다. OSCE의 이그나시오 산체스 아모르 특별조정관은 “터키 유권자들은 언론의 정보 유포 위축과 표현의 자유 제한으로 진정한 정치적 대안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에르도안 대통령에 비판적인 TV 방송국 2곳이 경찰의 수색을 받으면서 언론 자유에 제약이 가해졌다. 야당 당원들에 대한 신체적 공격 등으로 야당의 선거 운동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HDP 일각에선 지지자들 보호를 위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마가레타 세더펠트 OSCE 참관단 단장은 “민주적 선거를 위해서는 후보들이 안전하게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고 유권자들은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OSCE 참관단의 비판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터키의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것이다. 터키는 이제까지 이슬람국가들 가운데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돼 왔다는 평가를 들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터키는 총선 이전과의 터키와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헌 강행 추진은 많은 충돌을 빚어낼 것이 확실하지만 테러 방지와 안정 확보를 구실로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다. 쿠르드계와의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이고 그에 따른 영향은 고스란히 터키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터키 국민들이 갈구했던 안정 역시 요원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는 결국 그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만 도움이 될 뿐이다. 이번 터키 총선은 터키의 민주주의라는 분명한 패자만 낳았을 뿐 확실한 승자는 찾기 힘든 결과를 가져왔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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