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사람과 세상]

1950년 10월 대구역앞에 몰려든 피난민들. ©경향신문=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일제 치하와 6·25··· 아픔과 시련 점철된 한국인들의 가족사

[오피니언타임스] 100여년 전 나라를 빼앗긴 후 이 땅에서 살아온 한국인들 중 사실 온전한 가족사를 지닌 집은 몇 집 되지 않는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이북 강원도에서 자란 우리 조부모는 일제 치하에서 대부분의 동시대인들이 그러하듯 살 길을 찾아 함경도·평안도 일대를 떠돌아 다니며 살다가 해방 전 영등포에 정착했다. 거기서 할머니는 국밥장사를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그러나 장성한 큰 아들(내 큰 아버지)은 의사가 됐으나 한국전쟁 때 국군 총에 맞아 숨졌다. 미처 피난을 못가 북한군에 납치돼 끌려갔다가 인천상륙작전 덕에 탈출해 서울로 오다가 지금 경기도 양평 용문에서 인민군 첩자로 몰려 현장에서 ‘즉결처분’당하고 말았다.

6.25 당시 대학 4학년이던 둘째 아들(내 아버지)은 종군기자가 된 뒤 군 간부들과 만나 한잔 하는 자리를 갖게 되면 “너희들이 우리 형 죽였다”며 멱살잡이를 하며 화풀이를 했다고 한다. 그 둘째 아들마저 얼마 후 사고로 잃고 조부모는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갔다. 셋째 아들(내 삼촌)은 대학을 마치고는 한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이민 가 버리고 말았다. 첫째 아들이 숨질 때 남긴 외동딸이 당시 2세. 그녀는 자라면서 결국 아버지를 잃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훗날 미군 GI와 결혼, 미국으로 가버렸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할아버지가 간혹 남몰래 홀로 흐느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국군의 총에 맞아 생떼 같은 자식을 잃었지만 우리 조부모가 국군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나는 없다. 조부모가 무슨 이념이나 정치적 의식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때는 전쟁통이었고 그런 시절이었다. 인민군이 양민을 학살하고, 국군이 부역한 양민을 학살했다. 모두가 가해자요 피해자였고, 선과 악이 교차됐던 시기였다.

그러나 굳이 조부모의 생각을 더 추적해보면 통일이든 뭐든 전쟁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던 김일성에게 보다 비판적이었다. 그 통에 조부모님의 후반기 인생도 엄청나게 힘들지 않았던가.

6.25 전쟁 당시 한국군 병사들이 썼던 철모. 녹슬고 구멍난 모습에서 전쟁의 상흔이 느껴진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적의 역사’ 일궜지만 명암 엇갈려

이후 한국에서 기적같은 역사가 이뤄졌다. 독재도 있었고, 군사 쿠데타도 일어났으며, 인권 유린도 자행됐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일어섰고 부강해지고,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도 이뤘다. 1945년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함께 일제로부터 해방이 될 때 가장 희망이 없던 곳이었던 한국이 이젠 아시아의 모범국가가 된 것이다.

그 세월 동안 명암도 있고 공과도 있었고, 또 다른 이풍진 삶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지도자인들 온전한 모습만 있겠는가. 지금 인권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이 과거 벌인 인디안에 대한 집단학살,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우리는 기억한다.

역사는 1차적으로 사실(事實·fact)에 충실해야 한다. 사실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상황을 기초로 해야 한다. 후세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의 틀로 짜맞추거나, 한쪽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조부모님의 생각을 존중한다. 그들은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자신들의 삶에 감정이나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보지 않았다.

역사에는 또한 의견(意見·opinion)이 존재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를 사관(史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관점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역사라면 정론(正論)이요, 스탠다드여야 한다. 야사(野史)가 아닌 정사(正史)여야 한다.

교육부가 보관 중인 현행 역사교과서 8종©포커스뉴스

3000년 유랑한 유태인의 긍정 역사관… 우리도 올바른 역사 전해야

이런 점에서 유태인의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그들의 역사는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선인(先人)들의 공과와 장단점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그들의 역사에서 선인(善人)과 악인(惡人), 내 편과 네 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이 존재할 뿐이다.

유태인의 사관을 보면 전통과 자부심, 그리고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고 있다. 선행은 후대가 배우고 존경해야 할 대상으로, 악행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결국 그네들의 역사에는 영웅도 많고, 긍정적 시각이 많다. 어찌 보면 나라를 빼앗기고 3000년간이나 전 세계를 유랑한 민족이라면 자신들의 역사나 선조들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으련만 그들은 도리어 자랑스럽게, 그리고 용서와 화합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 역사관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 유태인이 존재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자랑스런 역사다. 일국의 역사가 모범생들의 드라마가 아니듯 우리 역사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모범생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잘한 점도 배우고, 잘못한 점도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총체적으로 역사를 통해 선대와 후대가 만나고 서로 긍지와 화합의 정신으로 이 나라를 더욱 정의롭고 부강하게 일궈나가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국사 교과서 문제를 놓고 국정화냐 아니냐는 것은 논란의 포인트가 아니다. 올바른 역사를 후세에게 전해주느냐 아니냐가 문제다. 집의 기둥이 기울어져 있다면 그 속에 사는 삶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기울어진 집은 바로 세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국사 교과서도 바로 서야 한다.  

 

 함영준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전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전 조선일보 사회부장·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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