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잠복해 있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20대 국회의원 ‘공천 전쟁’이 재점화하면서 정치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어떡하든 지역구 공천만은 받아 보려는 현역 의원들의 움직임이 특히 눈에 띈다. 정치개혁이든 민생경제 살리기든 모든 것이 아생연후(我生然後)의 일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0월2일 열린 제19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대표는 문 대표에게 “오픈 프라이머리 말곤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포커스뉴스

오픈 프라이머리, 국민 위한 제도인가 현역 기득권 지키기인가

현재 여야 할 것 없이 비주류측 의원들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오픈 프라이머리가 ‘전략 공천’보다 약 2배의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면 공천장사, 밀실공천, 나눠먹기 같은 비리도 차단할 수 있어 개혁 성향이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공천을 따내는 것이 우선인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시작된 오픈 프라이머리는 정당의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 선거권을 당원이 아닌 비당원인 지역 주민에게까지 주는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지명도와 조직력에서 앞서는 현역 의원이 정치 신인을 포함한 다른 예비 후보들을 누르고 본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여야를 불문하고 전략공천을 통한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오픈 프라이머리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는 것 같다.

9월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제337차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둘러싼 공천 전쟁의 이면에는 의원들의 ‘밥그릇 싸움’이 숨어있다.©포커스뉴스

친박의 ‘대구 물갈이’ 주장, 오픈 프라이머리에 다시 불 지펴

새누리당의 정병국·김용태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은 지난 12일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공천을 해야 한다며 인위적인 물갈이를 반대했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8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 빈소에서 “대구·경북 의원들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불을 지핀 데 따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10일 국무회의에서 “다음 국회에서 국민들이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고 말해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비롯해 최근 잇따라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전·현직 장관과 청와대 참모 등 박 대통령 ‘친위 세력’들을 대구·경북 지역 등에 ‘전략공천’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잇따랐다.

비박계 의원들로서는 친박의 물갈이 주장이 탐탁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픈 프라이머리제를 해야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목해야 할 정치인은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다. 그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20대 총선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윤상현·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의 공격을 받고는 당 특별기구에 공천룰 결정을 위임하기로 하는 선으로 물러났다. 친박계는 현 당헌·당규대로 국민 50%, 당원 50%의 비율로 경선을 해서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원 아래 지금까지와 같이 당내 심사와 경선을 거쳐 공천을 하면 친박계의 탈락 가능성이 낮은 데다 청와대 출신 참모 등을 새로운 인물로 수혈해 친박 세력의 확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공천 탈락 ‘트라우마’ 김무성 행보 관심

하지만 18대·19대 공천에서 배제된 뒤 각각 무소속과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김무성 대표도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 대표가 된 뒤 취임 일성으로 “나는 공천권을 내려 놓겠다”고 했다. 최근 경남 고성군 등 24곳의 10·28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후에도 “국민과 지역 주민이 원하는 대로 상향식 공천을 한 것이 옳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현재 50%인 국민의 참여 비율을 70~80% 선으로 높이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표는 여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다. 지금까지 자신의 언행에 비춰 보면 현행 당헌·당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굴욕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권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수많은 후보들 중 누굴 택하지? ©플리커

오픈 프라이머리와 공천 탈락제, 어느 쪽이 개혁의 방향인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지난 12일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결정한 ‘현역의원 20% 공천 배제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제안하는 의원 총회가 열렸으나 반대 의견이 많아 무산됐다. 의원 총회 소집에 서명한 의원은 81명이나 됐다. 이들은 “의원을 평가할 수 있는 주체는 당 대표나 계파도 아닌 오직 국민만이 할 수 있다”며 인위적 물갈이와 전략공천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새정치연합에서는 이미 조은 동국대 교수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20% 공천 배제를 위한 의정활동 평가에 들어갔다.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는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주장에 대해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사수를 위한 반 혁신’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새정치연합 안에는 문재인 대표를 흔드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지만 문 대표로서는 자신이 발족시킨 김상곤 혁신위의 안을 관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야 현역 의원들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오프 프라이머리 도입 주장은 국민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국민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지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신인의 등장을 바란다.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공천해 더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킴으로써 정당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앞으로 여야의 공천 전쟁과 계파간 권력 쟁투는 더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새누리당에서는 국민 참여 비율을 얼마나 높이는 공천제를 도입하느냐, 새정치연합은 20% 공천 탈락제를 어느 정도 관철해 내느냐가 개혁의 방향인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각각 김무성·문재인 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확대하려 하고, 문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주장을 제어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유권자인 국민도 그런 점을 생각하며 관심 있게 공천 전쟁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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