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의 활쏘기]

10월18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열린 쇼팽 국제 콩쿠르에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본 공연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프레데리크 쇼팽 인스티튜트

[오피니언타임스] 지난 달 폴란드에서 열린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나라의 조성진 씨가 1위를 차지한 이후 클래식 음악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조씨의 콩쿠르 실황 연주 음반 5만장이 발매 1주일만에 다 팔리고 5만장이 추가로 나온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음반이 1만장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발매 첫날에는 먼저 사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니 그야말로 열풍이다. 이런 바람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과거의 사례였다.

조씨는 수상 후 인터뷰에서 손이 저절로 연주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겸손한 태도였다. 클래식 음악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면 조성진의 연주는 21살 수준의 음악이 아니었다고 한다. 쇼팽에 대한 깊은 연구와 해석이 현지의 쇼팽 전문가들과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조씨는 연습은 물론 이거니와 쇼팽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작곡가 쇼팽의 인생과 철학까지 담아내려 했다고 하니 충분히 1위를 차지할 만하다는 평가다. 그러니 5년에 한번 열리는 콩쿠르에서 1위를 한 것이리라.

그렇다 해도 이번 클래식 열풍이 단지 그의 뛰어난 음악성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사람까지 음반을 살 정도로 관심을 보인 데는 분명 다른 요인도 있을 법하다. 무엇보다도 조씨가 피땀 어린 노력과 연습을 기울여 1위를 했다는 소식이 감동을 주었지만, 그의 부모에 대한 언론 보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조씨의 부모들은 재벌급 재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자녀교육에 극성스런 것도 아니라고 전해지면서 관심이 더 쏠렸던 것 같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갈라쇼에서 환상적인 스케이팅을 선보이고 있다. 1위만 기억하는 사회에서 예술에 도전하는 건 쉽지 않다. ©플리커

‘부자 부모’만 가능했던 음악 교육

평범한 부모치고 아들 딸이 음악을 한다는데 아무 걱정 없이 좋아라고 할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빨리 망하려면 음악을 시키고, 천천히 망하려면 미술을 시키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음악 미술 같은 예능 교육에 드는 교육비가 보통 사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명 음악가들의 부모들은 남다른 재력을 가졌었다. 재력이 아니라면 부모의 인생을 포기할 정도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조씨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적어도 언론보도로는 조씨의 부모들이 ‘큰 부자’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요컨대 재능보다 부모의 재력과 뒷받침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할아버지가 부자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청년들 사이에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것을 탓하고,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금수저인지, 흙수저인지 구분한다고 하는 세태에서 조성진이 돋보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부자가 아니면 자녀에게 음악 교육을 시키기 어려운 환경이 바뀔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분간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 비해 음악 교육을 바라보는 인식이 크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의사 판검사 같은 ‘사’자 직업이 예나 지금이나 인기를 끌지만 예능 교육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줄어들었다. 주위에 예체능 교육을 한다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예전에 비해 늘었다.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자녀가 클래식 음악을 한다고 하면 선뜻 나서기 힘든 장애물이 많다.

1등주의 사회에서 F학점을 받으면 실패한 인생일까. ©플리커

예술회관에 밀린 오케스트라

일등만 알아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큰 방해물이다. 조성진을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이 1위를 할 때까지 국제 음악 콩쿠르에 도전한다고 한다. 1위만 알아주고 2, 3위는 눈길도 주기 않기 때문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금메달에 도전했듯이 1위에 도전해야 한다면 어느 부모인들 쉽게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예능교육은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일등만 알아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어려서부터 예능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재력이 충분하지 않은 ‘보통 부모’들은 자녀의 예능 입문을 극력 말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위만 알아주고 1위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풍토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예전부터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자만 인정한 것처럼 일등만 알아주는 오랜 전통이 있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내야 기억해주지 않는가.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승자 독식’의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각 분야마다 1위만 승승장구하고 2,3위 이하는 살아남기도 힘들게 됐다. 인기를 잃을까봐 공황장애에 빠지는 연예인이 적지 않다는 소식도 일등만 알아주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일등만 알아주는 사회가 오래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며 한국을 떠나려는 것도 순위가 행복을 좌우하는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일등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일등에게 보내는 갈채가 더 값지게 될 듯 싶다.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를 중시하는 풍토도 문제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는 예술학교가 있어선지 예전에는 오케스트라가 활동했으나 언젠가 슬그머니 없어졌다. 구청 예산이 부족해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수백억 원을 들여 번듯한 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섰으나 이제는 좋은 작품을 구하지 못해 놀리는 날이 많다. 공연 예산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다고 동네 아마추어 연주회나 대중음악회에는 빌려주지도 않는다. 클래식 공연이나 연극 오페라 뮤지컬에만 빌려준다는 것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나 조성진도 주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동네마다 비슷비슷한 문화예술회관을 지어 놀릴 돈이 있다면 재능 있는 미래의 음악가를 발굴해 지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박영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전 한국경제·한겨레 기자 

 전 세계미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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