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정부 규탄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포커스뉴스

공권력에 의해 사경을 헤매는 노인

[오피니언타임스] 며칠 전 일인데 벌써 아득한 옛날처럼 멀어 보이는군요. 저는 그날 광화문에 있지 않았습니다. 강의를 나가는 학교의 학생들과 지방에서 현장학습 중이었습니다. 커리큘럼에 명시된 행사였기 때문에 취소할 수도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화문에 마음을 두고 간 건 분명합니다. 내내 뭔가 불편했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것 또한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부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지난 14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그날 벌어진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이 동반된 시위를 옹호할 생각도 없습니다. 차벽 설치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과도한 행정권 행사'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도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위정자들을 성토할 생각은 더욱 없습니다. 저는 단지 사람, 그들 각자가 지닌 최후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날, 멀리 있어도 시선은 자꾸 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현장 사진과 동영상이 쉬지 않고 올라왔습니다. 몰려드는 군중과 그 어떤 성(城)보다 고집스럽게 보이는 차벽. 그중 제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 물대포였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위력을 실감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마음에 걸린 것은 비가 오는 바람에 제법 싸늘해진 날씨였습니다. '저 물대포를 맞으면 무척 춥겠구나‘하는 생각에 이어 '저걸 정통으로 맞으면 사람이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하는 걱정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공중에 대고 뿌리겠지'하는 기대는 끝내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올라오는 사진과 영상은 그런 기대를 송두리째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총알처럼 쏘아져나간 물줄기에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는 사람. 그 위에 조준사격을 하듯 쏟아지는 물대포.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대포는 쓰러진 사람을 구조하려는 이들도 덮쳤습니다. 거기에서 ‘해산’이나 ‘격리’라는 목적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증오’와 ’타격’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뿐이었습니다. 적이 아닌, 국민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이 나라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은 분노에 불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한 남자. 마치 적진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것처럼 보이는 그는, 대한민국의 농민이었습니다. 69세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를 쏘고 있다. ©포커스뉴스

국가에게 국민을 죽일 권리는 없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그날의 상황과 관련, "백OO 씨의 상황은 전적으로 경찰 측의 폭력에 의해 일어난 상해다. 또한 '예정된 참사'다. 집회 참가자에 대한 물대포의 무차별 난사나 특정인에 대한 집중살포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물대포 난사나 집중살포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언제라도 이번처럼 매우 위중한 상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만큼 물대포가 위험하다는 뜻이겠지요. 신중하게 사용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고요.

그런 사실을 경찰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방법과 시기, 절차 등에서 운용 규정에 맞게 쐈다"는 경찰 고위관계자의 발언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제게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뜻만 엿보일 뿐이었습니다. 물대포도 분명 곡사살수를 하라든지 불가피하게 직사할 경우에도 가슴 이하 부위를 향해 쏘라든지 하는 등의 규정이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무차별 살수를 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바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이 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저는 어느 쪽의 폭력도 편들 생각이 없습니다. 수시로 땅에 묻히는 인권을 새삼 꺼내들 생각도 없습니다. 사람, 그것도 저와 같은 나라에 사는 국민의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제한할 수는 있겠지만 죽일 권리는 없습니다. 국가 전복을 시도하거나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광장에 선 사람에게 말입니다.

1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농민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 농민 살인 진압, 강신명 경찰총장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제 스스로가 물대포를 맞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역시 마음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대체 무엇이 사람의 목숨에 우선할까요?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딛고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세상 어디에도 국민 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야할 마지막 보루라고 믿고 있는 헌법을 생각해 봅니다. 병역 의무를 다했고 없는 돈 쪼개 세금을 내는 제가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 받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헌법 제7조 1항)

대통령도 경찰도 공무원입니다. 국민이 살아있어야 그 자리가 존재합니다. 죽은 다음에는, 그들에게 봉사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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