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최고의 배우 중 한명인 로빈 윌리엄스. 치매로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플리커

로빈 윌리엄스의 치매 자살과 한국 노인의 치매 살인

[오피니언타임스] 지난해 8월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는 시대에 명배우 반열에 오른 그가 63세라는 나이에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니 안타까웠다. 그의 출연작은 대부분 우리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사회성 짙은 영화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년), 굿윌 헌팅(1997년), 바이센테니얼맨(1999년)을 보고 조금씩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한데 그의 사망 원인이 11월 4일 새롭게 전해졌다. 하루 전인 3일 부인 수전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은 윌리엄스가 우울증이 아니라 퇴행성 치매 탓에 자살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수전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퇴행성 치매의 일종인 루이소체 치매를 앓았다.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흔한 루이소체 치매는 심리적 불안정과 환각, 운동기능 장애를 일으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치매 노인이 가족에게 짐이 돼 괴롭다며 자살한 사건들이 보도된 적이 있다.

다음날인 11월 5일에는 치매 환자가 자신을 해친 게 아니라 주위 사람을 해친 다른 차원의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대법원에서 10월 15일에 살인죄로 기소된 치매 환자 A(71)씨에 대해 “미약하지만 사리 판단 능력이 있었다”며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항소심을 확정했다는 것이었다. ‘미약하지만’이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변호인은 “정상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4월 부산의 요양원에서 옆 침대로 뛰어올라 다른 환자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서울고법에서는 9월 3일에 지난해 9월 경기도 요양시설에서 같은 방에 있는 환자를 목 졸라 숨지게 한 B(80)씨에게 “사물 변별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라며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하고 치료 감호처분을 내렸다고 했다. 두 판결 기사의 제목은 “죽인 줄도 모르는데···”였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 가슴 아픈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의 심리· 육체· 경제적 고통이 떠올랐다. 치매 배우자를 수발하던 남편이나 아내가 배우자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여러 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잘 죽는 일 중요··· 치매 환자 관리와 호스피스·완화의료 시급

치매 노인들의 자살과 범죄, 가족들의 어려움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잘 죽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통계청이 9월 24일 발표한 ‘201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자는 662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3.1%를 차지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1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잘 죽는 법은 없는 걸까. 생사학(生死學) 연구자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꼭 신앙을 갖지 않더라도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옮겨가는 것이라고 믿으면 죽음을 좀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죽음 뒤에 다른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면 현재의 삶을 자살로 마무리한다거나 아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40년 동안 삶과 죽음을 화두로 삼은 20세기의 대표적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에서 벗어나 나비처럼 날아오른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2004년 8월 자신의 장례식에서 친지와 동료들에게 부탁해 수많은 나비들이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가도록 함으로써 은하수로 춤추러 떠났다.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갈 거예요. 그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 거예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플리커

‘조화로운 삶’의 저자인 미국의 자연주의자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느리고 품위 있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1983년 8월 100세 생일을 지낸 뒤 보름 정도 더 살았다. 그는 죽기 한 해 전인 1982년에 오래 전부터 준비해 둔 요망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부인 헬렌에게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죽을 병이 오면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치매 환자들의 잇단 자살과 범죄는 우리 사회와 정부가 조기 검진과 발견, 치료와 상담과 관리, 자살·범죄 예방과 격리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 관련 법안도 19대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불치의 말기 환자와 가족을 덜 힘들게 하고 삶과 가정이 파괴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고령화 시대에 죽음의 질을 높이고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관련 법안들의 법제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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