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오피니언타임스] 우리는 너 나 없이 통일을 좋아한다. 크게는 남북통일에서 시작하여 국론통일이라든가 교복을 통일한다거나 심지어 식당에서 냉면으로 통일하자는 것까지. 그런데 왜 남북통일도 국론통일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음양이 조화를 이룬 태극문양. 참된 통일은 다름을 인정하면서 보완, 상생하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픽사베이

획일주의적 통일은 말썽과 불화의 원인으로 작용할 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통일을 그렇게도 좋아하고, 무엇이나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생각 자체가 바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저해하는 가장 결정적 방해요소라 생각한다. 왜 그런가?

우리가 ‘통일’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 말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사용한다. 하나는 여럿이 어느 한 가지 공동의 목적을 위해 뭉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 무조건 단색적으로 똑같이 한 가지가 되는 것이다. 영어로 하면 ‘유니티(unity)’와 ‘유니포미티(uniformity)’의 구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보완, 상생하는 관계로 ‘화합’하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누구나 무슨 일이 있든 한 색깔, 한 모양, 한 생각, 한 행동으로 똑같아야 한다는 ‘획일성(劃一性)’을 뜻한다. 전자는 음양이 서로 다르면서 둘 다 함께 ‘태극’이라는 변증법적 종합으로서의 하나를 이루는 것이고, 후자는 음양이 한 가지로 음이 되든지 양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색깔은 달라도 똑같은 오리 ©플리커

역사에서도 한가지 생각을 강요해선 안 돼

우리가 ‘냉면으로 통일하자’고 하거나 ‘교복을 통일한다’고 할 때의 통일은 이 두 가지 통일 중 후자에서 말하는 획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획일주의적 통일은 요즘 같은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통일, 참된 의미의 통일은 이런 것일 수가 없다. 이런 형태의 획일화된 통일에의 염원이야말로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서로 모여 화합을 이룬다는 의미의 참된 통일은 불가능하게 한다. 모든 말썽과 불화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될 뿐이다. 이런 식의 통일은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 아니라 이 겨레를 비롯하여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을 죽이는 일이다. 역사에 관한 것이든 그 무엇에 대한 것이든 결코 한 가지 생각을 강요할 일이 아니다.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만사가 똑같아야 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려면 모든 면에서 꼭 맞아 떨어져야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달라도 ‘틀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서로 다르면 어느 한 쪽이 틀렸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통일하자고 주장하는데, 실생활에서 감옥 같은 특수 목적을 위해 프로그램 된 사회가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고집이 있는 한 그야말로 융화와 화합으로서의 통일을 기대하기는 곤란한 일이다.

©플리커

참된 통일은 독특성과 화합이 어우러지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참된 의미의 통일이란 물에 물탄 것처럼 싱겁게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목표, 한 가지 이상(理想), 한 가지 구심점을 향해 서로 다른 것이 모여서 새로운 차원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개체의 독특성을 인정하면서 뭉치는 화합(和合)이다. 논어에서 공자님이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그 ‘화(和)’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조화된 음을 내는 것, 모자이크처럼 조화된 모양을 내는 것, 김치에 들어간 온갖 종류의 재료들이 어울려 조화로운 제3의 맛을 내는 것이다.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 서로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권리를 존중하면서 하나 더 높은 차원의 무엇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는 데 합의한다(We agree to peacefully disagree.)’의 태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화로운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서로 달라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다른 것은 조화를 이루는 방해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필수 요건이라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것이 없는 데는 조화라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다. 따라서 무조건 상대방의 개성이나 의견을 짓누르거나 그 생각을 억누르고 꺾어버리려는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 획일주의적 사회, 그런 마음 바탕에서는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는 참된 의미의 통일이란 불가능하다. 참된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 진정으로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마음, 상호 존중과 신뢰의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힘 있는 쪽에서 먼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노자님의 도덕경 제61장에 보면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스스로를 낮춤으로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향해 내려감으로 큰 나라를 얻습니다’라고 했다. 남북 관계에서 남쪽이,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