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 지난 11월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 간의 역사적인 싱가포르 회담에서 두 사람은 공식 직함 대신 보통명사인 ‘선생’으로 서로를 호칭했다. 66년 만에 처음 만날 만큼 양안관계의 복잡·미묘함이 ‘선생’이라는 호칭 속에 함축돼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지난 7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신화/포커스뉴스

‘하나의 중국’ 원칙이 낳은 복잡 미묘한 ‘양안’ 관계

모두가 알 듯 중국의 공식 국호는 중화인민공화국(PRC)이고, 대만은 중화민국(ROC)이다. 유엔 회원국인 중국의 국호는 국제사회와 국제기구에서 널리 통용되지만, 중화민국은 유엔에서 쫓겨난 이후 대만으로 불리고, 유엔 산하의 어느 기구에조차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 산하가 아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회원국으로서 대만의 호칭은 ‘차이니즈 타이페이(Chinese Taipei : 중국의 臺北)’로 국가 명칭인지 도시 명칭인지 애매하다. 두 나라 관계는 국가관계가 아니라 대만 해협 사이의 관계여서 ‘양국관계’가 아닌 ‘양안관계’다. ‘선생’ 호칭만큼이나 절묘한 절충식 호칭이다.

이렇게 된 것은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의 독립국 지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려면 중국으로 돼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나라든 대만과 수교하려면 중국과는 단교하라는 것이 중국의 으름장이다.

대만의 통일 방식은 ‘본토회복’이었지만 이를 철회한 지는 오래다. 양안관계가 대결에서 교류로 전환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현 가망성이 없는 공허한 구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19일 대학생 등 시위자들이 대만 입법원을 점령하고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강행 처리한 국민당에 항의하고 있다.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3통(通) 정책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대만은 중국 예속 두려워 해

이처럼 모호한 호칭들의 근거는 이번 시마회담에서 시 주석에 의해 재강조된 ‘92 공식(共識·공통인식)’이다. 1992년에 두 나라는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하되 해석은 각자가 한다”고 합의했다. 이런 전제 하에 ‘선생’이니 ‘양안’이니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선 승자의 여유다.

‘92 공식’ 이후 두 나라는 통행 통상 통신 등의 이른바 3대통 정책 아래에서 교류를 확대해 왔다. 양안 간 작년 무역액이 2000억 달러에 육박했고, 수지상으로는 대만이 280억달러의 흑자였다. 인적교류도 마 총통 취임 후 7년 동안 3400만 명, 작년 한 해에만 730만 명이었다.

두 나라는 3통 정책으로 사실상 한 나라처럼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GDP의 40%를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이 되면서 대만인들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커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대만 경제가 중국에 예속돼 중국에 의한 통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자유민주체제의 대만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기에 ‘하나의 중국’ 원칙이 중국 위주의 원칙일 뿐 대만의 발전을 옥죄고, 국가적 정체성 손상을 가중시킨다는 인식이 대만인들 사이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조차 대만 호칭 문제로 거부되고 있는 것에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인 자유무역협정(FTA)을 어느 나라와도 제대로 맺을 수 없어 무역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대만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도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이라는 게 대만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것이 내년 1월 총통선거 및 입법원(의회) 선거에서 대만의 독립을 주장해온 야당 민진당이 우세를 보이는 원인이다. 이번 시마회담도 대만의 민심을 민진당에서 여당인 국민당 쪽으로 돌려보려는 시도라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회담에서 시 주석은 마 총통의 자주역량 확대 요구에 대해 “독립 세력은 양안관계의 최대 위협”이라고 응수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민진당을 겨냥한 것이지만 대만의 민심 전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만 선거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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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수준 남북관계, 중국·대만 관계에 배울 것도 많아

양안관계는 분단국에서 교류가 성숙단계에 들어간 이후에 야기되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했지만, 교류는 앉은뱅이 수준이다. 양안 사이의 인적왕래가 올해 1000만 명에 육박할 전망이나 남북한 간에는 사람 장소 시간 대화가 통제된 상태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200명이 고작이었다.

남북한은 양안국가와는 달리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가다. 헌법상으로 남북한 모두 상대지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한다.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고 선언적으로 규정한 것과 달리 북한은 남한을 혁명을 통해서 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통일도 독립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통일된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양안관계라면, 독립했으면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되뇌며, 동시에 서로를 적대하는 것이 남북한 관계다. 우리에겐 부럽고, 배울 것도 많은 시마회담이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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