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경제산책]

[오피니언타임스] 최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둘러싸고 ‘조문정치’ ‘빈소정치’라는 말이 나왔다.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정치행위를 하는 것을 비판하는 논리에서다. 여야의 거물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망자(亡者)의 빈소라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여러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곳이다. 그 사람이 생전에 얼마나 돈과 권력과 명예를 누렸는가, 그 가족이 아직도 위세가 있는가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포커스뉴스

추도식 늘어, 큰 행사로 변질

그러나 요즘 들어 한국사회의 ‘새로운 현상’ 중의 하나는 바로 매년 치러지는 각종 인사들의 추도식(追悼式)이다. 추도식을 액면 그대로 보면 돌아가신 분을 기리고 추모하는 자리이다. 거물 정치인이나 재벌 회장, 기업체나 언론사 창업자 등이 세상을 떠난 후 1년마다 한번씩 정치인들과 기업인이나 기업 임직원들이 각각 그 자리에 모인다.

어느 재벌가의 창업주 추도식에 그 자녀인 계열사 회장이나 사장이 누가 참석했는지가 신문사 사진과 기사로 등장한다. 창업주 자녀인 어느 회장이 불참하면 그 재벌가 내부의 형제간 알력 때문에 그렇다는 둥 재벌가의 세력관계를 점치는 단서가 추도식 행사를 통해 읽혀지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의 추도식에는 그 지지자들과 현역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한다. 그런 행사가 현 정권을 비판하는 등 정치 시위와 비슷한 양상으로 번지기도 한다.

모 언론사의 경우 창업주의 매년 추도식에는 언론사 간부들도 버스를 타고 지방의 창업주 묘소로 이동한다. 사내 단합을 위해 추도식이 활용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추도식이 과잉 행사는 아닌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추도식의 본질이 무엇인가. 추도식은 장삼이사(張三李四) 보통사람들에게는 그저 매년 돌아오는 기일(忌日)에 치르는 제사(祭祀)이다. 제사란 무엇인가. 가족들이 밤에 모여 음식 차려놓고 고인(故人)을 생각하고 절하는 행사다. 철저히 집안행사이다.

정치인의 추도식은 가족들만이 아니라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이 모이는 규모 큰 행사로 변질됐다. 언론사 창업주나 기업인의 추도식은 그 언론사와 기업에서 월급받는 월급쟁이들이 반드시 챙겨야 할 -불참하면 ‘불경죄(不敬罪)’로 간주될- 필수 행사가 되고 있다.

추도식은 보통사람들에겐 매년 치르는 제사에 불과하다. 가족들이 고인을 기리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포커스뉴스

추도식은 집안 행사··· 가족끼리 조용히 치러야

이쯤되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는 결혼식과 장례식의 과잉에 덧붙여 추도식이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매년 대규모로 치러지는 일부 정치인과 대통령, 기업 회장, 언론사 창업주 추도식에서 설혹 고인의 장점과 추모해야 할 인격적인 면이 있다고 해서 매년 무슨 새로운 덕과 장점이 추가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장점과 덕은 매년 재탕되고 그것이 신문 지면에 나올 때 독자와 일반인은 지겨울 뿐이다.

왜 추도식을 집안에서 조용히 치르면 안 되는가.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추도식을 빌미로 집단으로 정치 의견을 표출한다면 망자를 이용하는 셈이다. 언론사나 기업인들의 추도식에 그 기업이나 계열사에서 월급받는 봉급자들에게 눈치를 보게 하고 참석하게 만드는 것은 낭비적인 일이며 바람직하지 못하다.

추도식은 집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만 참석해서 조용히 치를 일이다. 결혼식도 조촐하게 치르자는 분위기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고 장례식 화환도 낭비이니 줄이자는 의견도 나오는 세상이다. 새로운 허례허식으로 추도식이 정계나 재계에서 는다는 것은 또다른 사회적 병폐요 허례허식이다.

 

 이상일

  전 서울신문 경제부장·논설위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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