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 지난달 22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27일 국가장을 치르기까지 봇물처럼 쏟아진 언론의 보도 중에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 기사가 하나 있다. 김 전 대통령 입관식을 마치고 나온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했다는 말이었다. “구김살 하나도 없이 훤하니 좋더라.”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예전에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랬다. YS는 해맑은 얼굴에 구김이 없었다. 40년이 넘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소년 같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인간적 매력이 그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는 희망의 정치인이었다.

11월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안장식이 엄수된 가운데 차남 현철 씨가 묘소에 국화를 뿌리고 있다.©포커스뉴스

YS, 민주화로 경제발전에 공헌··· 재평가 받을 것

YS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박하기 짝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 못지않게 민주화 운동을 이끈 YS의 공로도 재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독재 체제로는 잘사는 국가가 될 수 없다.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으면 경제가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덕분이기도 하다. 민주화 없이는 분배 구조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관한 연구는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민주 대 반 민주’ 시대의 종언이라며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통합과 화합의 유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것인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확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부족과 독선적인 국정 운영을 이유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보다는 국민이 사회·경제·문화 등 각 영역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삶의 물질적 토대인 경제 민주화가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경제 민주화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지난 10월 말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해 한국사회 부의 분포도를 추정해 발표한 논문은 우리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논문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을 기준으로 상위 10% 계층에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부(富)의 66%가 쏠려있다. 해외 자산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더 심각한 것은 하위 50%가 가진 자산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은 거지꼴이라는 뜻이 아닌가. 거기에다 부의 불평등도, 즉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언론도 그렇게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을 확인하고 나니 겁이 나서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하위 50%가 가진 자산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 ©플리커

국민의 절반이 거지꼴이라는데··· 경제 민주화 악화 걱정스러워

우리의 경제정책은 분배 구조를 더 악화시키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를테면 정부는 올해 초 국민 건강을 내세우며 담뱃값을 한 갑당 평균 2000원이나 올렸는데 부족한 세수를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메우는 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그 말이 맞았다. 담뱃값 때문에 금연한 사람은 아주 적었다.

정부는 경기 지표를 끌어올리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월부터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한 것도 그 예이다. 하지만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부의 왜곡된 분배구조 탓에 내수가 창출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 국민의 절반이 거지라면 수요가 창출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에게 전보다 돈을 두서너 배씩 더 쓰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한끼에 한 그릇씩 먹는 사람에게 서너 그릇씩 먹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부가 계속 편중되다 보니 부자 숫자도 조금씩 줄고 있다.

앞으로 경제 정책의 기준은 분배구조 개선에 맞춰야 한다고 본다. 현재 정부와 여당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들을 놓고 야당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그 역시 ‘언 발에 오줌 누기’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야당과 노동계의 주장대로 그 법안들이 비정규직 확대와 쉬운 해고로 가는 길을 트는 것이라면, 기업에만 좋은 단기 부양책이 될 뿐,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의 월급과 신분은 추락하고 분배 구조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언발에 오줌을 누면 잠시 따뜻해지지만 다시 얼어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부의 재분배 문제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플리커

분배구조 개선으로 헬조선에서 구출해내는 희망의 리더십 필요

요즘 젊은층 사이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우리나라를 지옥에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이 거지에 가깝다는 통계 수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더 강화된다면 헬조선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기회의 균등으로는 부족하다.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말은 빈말이다. ‘수저론’이 그것을 말해준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와 엇비슷하게 겨룬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장하준 교수는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기회의 균등이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분쟁과 공격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이다. 불평등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아무리 사회체제 전복 세력이라고 딱지를 붙여 몰아 붙이고 가두더라도 폭력을 싹틔울 기회를 찾고 언젠가는 폭발시키기 마련이다.

정치권은 YS 이후 민주주의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YS는 통합과 화합을 유훈으로 남겼지만 현 정치권을 보면 그런 표현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도 지역주의와 진영 논리, 계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논의가 숱하게 많았지만 귀담아 듣고 진지하게 실천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지역주의의 청산은 국민의 마음도 바꿔야 하는 지난한 일이다.

경제 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 시절에 내놓은 가장 중요한 공약이다. 의지만 있으면 실천 가능하면서도 사회의 분열을 두루 아우르고 치유할 명약이 될 수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국민에게서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희망의 과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특정 계층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희망했다.

불평등의 심화와 빈곤층의 확대는 희망의 위기로 이어진다. 미래의 부와 성공에 대한 기대를 잃으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로 희망을 불어 넣고, YS가 민주화를 위해 싸운 희망의 정치인이었듯이 여야 정치 지도자에게서 희망의 리더십을 보고 싶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이 되새겨야 할 경구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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