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의 종소리]

[오피니언타임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9.8%로 22주 연속 1위를 유지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7.8%로 2위를 기록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 13.5%, 안철수 전 대표 8.2%, 오세훈 전 서울시장 7.4%,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4.5% 순이었다.’

지난달 30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전한 연합뉴스 기사의 일부다. ‘문 대표는 1위인 김무성 대표와의 격차를 오차범위 내인 2.0% 포인트로 좁혔고, 안 전 대표는 오 전 서울시장을 제치고 5주 만에 4위를 탈환했다’라는 글이 바로 뒤따랐다. 대부분 인터넷 언론들도 비슷하게 보도했다.

11월30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 격차는 2%포인트로 오차범위 안에 있어 등수 매기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포커스뉴스

한국 언론, 표본오차 무시하고 등수 매겨 나열

독자들의 머리에는 어떤 내용이 남아 있을까? 김무성 1위, 문재인 2위라는 사실과 함께 안 전 대표가 4위를 탈환했다는 얘기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을 듯하다.

그러면 이러한 내용이 얼마나 정확하게 여론을 반영하고 있을까? 글쎄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외국에서도 선거 관련 여론조사 예측이 틀려 기관들이 망신을 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여론조사기관들이 정확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각종 기법과 방법 등을 계속 찾고 있는 이유다. 이들 기관들은 여론조사의 한계를 인정해 신뢰수준과 표본오차라는 과학적 개념을 동원해 달아날 구멍을 마련하고 있다. 일단 여론조사기관은 넘어가자.

문제는 이를 전달하는 언론에 있다. 특히 우리 언론은 신뢰수준과 표본오차라는 개념을 무시하고 흥미 위주의 등수 매기기에 급급하다. 등수 매기기가 체질화됐다. 앞에서 예를 든 여론조사는 신뢰수준은 95%로 표본오차는 ±1.9%포인트다. 1.9%의 두 배인 3.8%포인트 범위 내의 차이는 100%가 아닌 95% 믿을 만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 대표와 문 대표의 차이는 2% 포인트로 오차 범위 내에 있다. 순위를 매기는 것은 무리라고 여론조사 결과는 얘기하는 것이다. 안 전 대표와 오 전 시장의 차이는 0.8% 포인트다. 그야말로 미미하다. ‘탈환했다’라고 쓸 수 없다.

기존 신문이나 방송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지난 8월 창간 50주년 기념 여론조사결과를 보도하면서 ‘호남에서 문 대표의 지지율이 9.9%로, 오차 범위 내긴 하지만 김 대표의 10.3%에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불과 0.4% 포인트 차이에 우위를 매겼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미국 언론들은 어떨까. 표본오차 ±3% 포인트일 경우 1~2% 포인트 차이는 ‘통계적으로 비겼다’, 3~4% 포인트 차이는 ‘다소 앞섰다’고 쓴다. 요즘 미국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대선에 대한 보도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별하게 차이가 많이 날 경우 등수를 매기기도 하지만 오차 범위 내의 근소한 차이는 순서대로 수치만 나열할 뿐이다. 보도도 단순한 수치 전달보다는 추세가 어떤지에 초점을 맞춘다.

등수 위주의 경마식 선거보도는 언론 불신을 키우고 있다. ©플리커

경마식 선거보도, 선거 악영향에 언론 불신 초래

한국 언론들은 왜 이처럼 경마를 중계하듯 등수매기기에 목을 맬까. 등수매기기를 좋아하는 국민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등수를 매긴다. 학교도, 기업도 순위를 매겨 일류, 이류, 삼류로 나누어 모두들 일류만 바라본다. 여론조사 보도에서 언론들이 이러한 문화에 영합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체질화된 경마식 선거보도는 국민의 말초적 관심을 충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비싸다. 당장 등수 위주의 선거보도가 힘 있는 실체가 되어 선거판 자체에 직접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 차이인데도 불구하고 언론이 등수를 매겨버리면 그 등수만 유권자들의 기억에 남아 표몰아 주기 심리, 견제심리를 자극한다. 우리가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결과 발표를 제한하는 것도 여론조사 내용의 부정적 영향 우려 때문이 아닌가.

등수 위주의 경마식 선거보도는 언론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다. 근소한 차이로 인해 대선 유망 후보들의 지지율이 계속 뒤바뀐다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러한 보도의 영향은 선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러한 보도는 고질적 등수의식을 부추김으로써 우리 국민의 의식을 더욱 천박하게 만들 수 있다. 천박해진 국민의식에 언론이 또 따라가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2년이나 남았는데도 언론의 관심은 벌써 대선에 가 있다. 언론의 속성상 그런 현실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최소한 보도가 우리 정치 문화, 나아가 우리 미래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여론조사 보도부터 제대로 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승철

 전 경향신문 워싱턴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

 서울대 철학과

 저서 한국 외교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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