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의 법으로 사는 세상]

[오피니언타임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난센스다. 프랑스에서는 대학입학시험도 정해진 정답 없이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보기 위해 주관식을 고집한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오직 단 하나의 옳은 시각만이 있다는 개똥철학을 전제로 하는 국정화는 더 이상의 비평도 필요 없이 그냥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한마디로 우스운 일이다.

교육부가 보관 중인 현행 역사교과서 8종©포커스뉴스

국정화로 외눈박이 된다는 걱정은 기우··· KFX 사업 등 비리 묻혀

그럼 현 정부는 이런 세련되지 못한 일을 왜 벌이고 있을까.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양해해 주는 쪽이다. 현재 우리 교육이 너무 자기비난에 함몰되어 있어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혀 자긍심을 심어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여 나라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길러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순수하게 받아들여 보자. 정신적으로는 아베가 소위 일본의 자학사관을 개선하기 위해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이것은 어쨌거나 찬란한 반만년의 문명이나 숱한 침략에 맞선 불굴의 의지, 혹은 눈부신 경제성장 등의 강조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교활한 꿍꿍이가 있다고 보는 쪽이다. 내년 총선이나 여타의 정치적 계산이 내재해 있을 수 있다. 특별한 정치적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공고히 하기 위해 비정치적, 비경제적 사안을 던진 것이다. 우선 새정치연합과 민주노총 등 국정화를 반대하는 쪽에서 이를 덥석 물었다. 그들은 지난 11월 14일 대규모 도심 반대시위를 실현하였고, 알다시피 민노총 위원장은 거기 있는 것이 확실하므로 은신이라 하기에는 뭣하지만 어쨌거나 현재 조계사에 피신중이다.

위 두가지 목적 중 어느 것이 진정한 기획의도였는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원래부터 국정화 문제는 그렇게 폭발력 있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당의원과 민노총에서 학생들 교과서에 무엇이 어떻게 쓰여져 있는가에 관심가진 적이 있던가. 지금 고등학교 문과에서 미적분을 배우는지 안 배우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그것이 영어나 수학이 아니라 바로 한국사이기 때문에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본인들 중 아직도 고교에서 배운 그대로 한국사를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가령 국정화를 한다고 해도 박정희가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정도 이상으로 만고에 없는 불세출의 영웅으로 묘사될 리는 없다. 따지고 보면 싱거운 일이다. 한 인간의 세계관은 교과서에 기술된 시각대로 복제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한 줄의 책이라도 읽고 잠시라도 자기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비록 이것저것 갖다 붙여서 만들었건, 독창적이던 간에 나름대로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게 된다. 우스운 일이지만,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단골로 나오는 질문처럼 5.16이 쿠테타냐 혁명이냐를 묻는 문제는 수능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이 외눈박이로 세뇌될까 봐 걱정하는 듯 하지만, 세상을 보는 단일시각이란 애초부터 헛된 꿈에 불과하다.

결국 국정화 이슈는 파리테러와 IS공습 보도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불씨를 다시 되살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둘러싼 양측의 득실은 어떻게 될까. 나는 반대 측의 손해가 더 크다고 본다. 국민들의 아픔과 아쉬움을 대변할 정확한 문제가 아닌 곳에서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정부입장에서 볼 때 공공, 금융, 노동 등 어느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개혁성과를 못 내고 있는 데다가 국정전반에 걸친 비리, 특히 KFX사업을 비롯한 방산, 합참의장 등 군수뇌부의 말도 안되는 뇌물사건 등등 핵폭탄급 사건 및 실정(失政)들을 어영부영 그냥 묻어서 흘려 보낼 수 있었다. 집권당의 부패 및 실정으로 탄핵위기를 맞고 있는 브라질의 딜마 호세프 대통령의 경우처럼 정권기반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대형사건들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국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쯤 되면 야당의원들도 여기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함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것들을 바로 잡아야 세상이 똑바로 설 텐데도 제도개선이나 구조변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이제 검찰의 수사능력과 판사의 알량한 애국심에 기대는 개인비리 사건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국정화 미끼는 자신에게 향할 칼끝을 피해간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11월14일 정부 규탄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포커스뉴스

11월14일 도심시위는 현 체제로 안 된다는 외침

11월14일 도심반대시위의 성과는 무엇일까.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 이외에는 현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의 규모와 참가자의 열정의 강도를 가늠한 것 정도라고 본다. 그들의 구호는 무엇이었나. 물론 국정화 반대였다. 그리고 민노총의 노동법개악반대, 전농의 한중 FTA 반대 등도 함께 가세했다.

국정화는 위에서 본 바와 같고, 노동개악을 예로 들어보자. 민노총이 현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을 개악이라 주장한다면, 현재의 노동조건은 바람직하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들이 항변하는 대로 지금 온 나라에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이 가득 차있다는 말인가. 개정이 개악이고, 현규정도 최선이 아니라면, 입구는 어디이고, 출구는 어디라는 것인지, 모순된 행보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리고 전농의 주장에 동조하여, 오늘 국회에서는 한중 FTA 타결의 전제조건으로 중국과의 무역으로 본 기업의 이득을 강제로 떼어 1조상당액을 농민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방안이 통과되었다. 솔직히 이것도 우습다. 공산품부문 종사자들은 외국과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데, 농산품 생산자들은 왜 가만히 앉아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보조를 받아야 하는지, 그렇다면 누구에게 무슨 이유로 얼마씩을 분배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모든 나라에서 농업보호에 나서고 있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무제한 그들의 요구에 끌려 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후배는 직접 11월14일 도심시위에 참석하였다. 평소 그의 비판성향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해서? 노동자, 농민의 일원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어서? 물론 아니다. 지금은 공통의 적에 대한 반대이므로 하나의 응집된 힘으로 나타날 뿐, 그 이면에서는 이해도 다르고, 시각도 다르며, 열정과 헌신의 정도도 다르다. 모래알 같은 그들을 뭉치게 한 것은 국정화나 노동개악, 중국농산물수입 같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내면에 있는 무의식, 말로 표현되지 않고 생각으로 정리해 본 적도 없는 것, 바로 인간답게, 국민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금 이 체제, 이 형태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 무언가 숨통을 틔워 달라는 것이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계층간 이동이 더욱 더 자유롭고, 정직과 성실이 완전한 보상을 받으며, 비리와 부패가 강력한 처벌을 받는 사회, 개인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이지 사회와 국가의 탓이 아닌 사회, 개인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이지 가문과 배경의 음덕이 아닌 사회를 원하는 것이다.

11월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화 교과서를 반대하는 학생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야당도 민노총도 현 체제 일원, 국민 함성 제대로 대변해야

정권을 담당한 자라면, 국회의원이라면, 그리고 민노총과 같은 국가 핵심조직을 이끄는 자들이라면 백성들의 내면의 함성을 들어야 한다. 말로 정리된 적은 없지만,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목소리, 욕망을 들어야 한다. 단지 불만의 현상이 같다고, 사람들이 모이라면 모여서 시위해 준다고, 오판하고 자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집권하고 있는 자들 및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 민노총 지도부니 하는 자들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을 뿐, 온 국민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현 체제의 일원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사이 좋게 공생하며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관계에 있다. 한쪽이 없어지면 다른 쪽도 존재이유를 찾지 못하여 당장 밥그릇이 사라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자기들끼리의 보신에 철저하다. 그들이 나의 주장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건 허상에 불과하다. 내가 그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니, 그들도 잘못된 방식으로 나를 대하고 있다. 나를 자기들의 로봇이나 허수아비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외면적으로는 민의를 대변하는 것 같아도, 가면 뒤에서는 비웃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발과 내 의지로 서야 한다. 나는 그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김형진

  변호사

  전 대우전자 법률고문

  전 대한주택공사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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