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꼼꼼세설]

[오피니언타임스] 이름 덕일까. 대박이다.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의 누적관객은 1341만6010명(영화진흥위원회 12월 2일 집계). 2015년 흥행 1위, 역대 3위다. 1위 ‘명량’(1761만5039명)과 2위 ‘국제시장’(1426만1181명)보다 적지만 둘 다 특정 이슈로 관객몰이를 한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짜 대박이다. 극장에서만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로 제36회 청룡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줬다.

흥행 이유를 놓고 각종 해석이 쏟아졌다. ‘권선징악 판타지 스크린 달군다’, ‘재벌 응징 스토리, 현실서 불가능한 권선징악으로 대리만족’, ‘형사가 재벌 잡는 판타지한 설정 카타르시스 선사’ 등. ‘시원한 곳을 긁어주는 사이다같은 영화’라는 평도 있다.

강의하는 대학의 학생들이 써낸 감상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학생이 형사가 재벌3세를 체포하는 영화 내용에 대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그렇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트럭 운전수 폭행이라는 내용만으로 과거 언론에 보도된 특정사건 관련자와 아무 상관없는 그룹 총수를 영화 속 사건의 실제 인물로 꼽은 사람도 있었다.

영화 베테랑 포스터.©포커스뉴스

‘베테랑’은 잘 만든 영화다. 주제도 스토리도 단순명료하다. 권선징악을 내세운 범죄오락액션. 광역수사대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사람 목숨 우습게 아는 마약쟁이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를 금품 공세와 윗선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추적해 체포한다는 내용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각종 사건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낸 감독의 솜씨는 뛰어나다. 전개 속도도 빨라 상영시간 123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황정민과 유아인은 물론 오달수, 정웅인의 연기는 영화 흥행을 이끄는 배우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한다.

그러나 대박의 주된 이유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권선징악 판타지의 실현에 따른 대리만족 내지 카타르시스’가 꼽히는 사실은 씁쓸하다 못해 참담하다. 주 관객(57%)이 2030세대(20대 24%, 30대 33%)이고, 실제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재벌3세가 형사에게 잡혀가는 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막장드라마가 헛웃음을 유발하는 터무니없는 내용과 비현실적 전개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끄는 요인은 하나다. ‘어쨌거나 막판엔 악한 쪽이 벌 받는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에 상관없이 나쁜 놈은 벌 받고 정의는 승리한다’가 영화와 드라마의 흥행코드가 된 건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회통념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게 틀림없다

지난 10월16일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서 귀금속 무상 수리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매장 직원들을 무릎 꿇린 여성 고객 영상. 갑질이 당연시되고 베테랑 같은 권선징악이 판타지 취급 당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유튜브 캡쳐

그렇더라도 중장년층도 아닌 2030세대 상당수가 권선징악을 ‘현실에선 있기 힘든 일’ 정도가 아닌 ‘불가능한 판타지’로 여긴다는 건 기막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기성세대가 뭘 어떻게 보여주고 가르쳤기에 세상 그 무엇도 겁날 것 없어야 할 20대가 재벌가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 죄를 지어도 잡혀가지조차 않는다고 믿게 된 것인가.

맷값 폭행, 보복 폭행, 승무원에 대한 막말과 폭행 등 보도된 것 외에도 재벌가의 터무니없는 행위에 대한 얘기는 많다. 불법․ 탈법에 의한 부의 축적과 세습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서도철 형사에게 압력을 넣는 윗선 같은 경찰간부와 검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벌3세가 잡혀가는 게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믿는 젊은 층이 많은 세상은 너무 아프다. ‘베테랑’ 대박의 뒷모습이 슬픈 것은 그런 까닭이다. 현실이 팍팍하고 버거워도 3포·5포세대, 흙수저·금수저 같은 말에 기 죽지 않는 젊은층, 영화가 주는 대리만족에 함몰되지 않고 서도철 부부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젊은층이 많아졌으면 싶다.   

 

 박성희

  전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한국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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