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현 경제부총리는 고질적인 경기침체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 고 정면돌파를 선언하면서 등장했지만, 역대 모든 정부가 해보았던 평범한 정책수단을 동시다발적으로 쓰다가 무대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 수출만 좋았으면 3%대 경제성장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고 위로하면서, 내년에는 3%대 중반까지 성장이 가능하다고 또 낙관하며 4월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픽사베이

현 정부는 뭔가 번지를 잘못 짚어왔다. 역대 어느 정부와 다름없이 확대 재정정책, 금리인하만 좀 강하게 밀어 부치면 충분하리라 생각했겠지만, 당황스럽게도 이미 경제는 오래 전에 구조적인 늪에 빠져있었다. 무늬만 소득정책, 모호한 기업이익 환류정책, 확실한 건설경기 부양, 특소세 감면, 대형유통점을 동원한 대대적인 할인판매 등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듯 하지만, 경기침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넓은 문’ 으로 들어가 손쉽고 탄탄한 길만 가다가 내려오는 셈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주된 원인은 ‘분배구조의 악화’에 있다. 이미 성숙된 자본주의 하에서 분배구조 악화라는 암적 존재가 경제구조 아래 거대한 빙산으로 존재하고 있고, 단지 표면 위에 일각으로 경기침체의 모습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재정금융정책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며, 가죽 구두 위에서 발가락 긁기, 언발에 오줌 누기 정도에 그치는 것이다. 무리하다고 할 정도로 아무리 강력한 확대재정금융정책을 밀어 부쳐도 작금의 경제성적표가 말해주듯이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뿐, 벗어나기는 요원한 일이다.

최근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13년 말 상위 10%의 자산가가 우리나라 총자산의 66%를 보유하고 있으며, 하위 50%는 2%만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자료에는 소위 지하경제로 감춰져 있는 자산과 해외자산을 포함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훨씬 격차가 심할 것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지금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장기적인 흐름에 따른 결과물이므로 더 걱정된다. 김 교수가 2014년에 자산규모가 아닌 소득규모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2012년에 상위 10%가 벌어드린 소득은 전체 개인소득의 45%에 달하는 데다 계속 증가추세이고, 하위 90%의 소득증가속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와 같이 장기적으로 쌓인 소득흐름(flow)이 자산(stock)의 격차를 가져와 이제는 겉으로 드러나 쉽게 눈에 띄게 되었고, 이것이 경제성장을 억누르는 무거운 바위덩어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플리커

그런데, 이를 직시하고 몸으로 막아야 할 정부정책은 어떤가? 복지에는 인색하지만 대기업의 법인세율 인하, 무리한 건설경기 부양, 담뱃값 인상, 특소세 인하, 상속세 덜어주기, 면세점 재벌허용 등 눈을 씻고 찾아봐도 분배구조 해결을 위한 정책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본 집적도가 높은 곳으로 자원이 흐르는 확실한 파이프라인이 형성된다. 아무리 정부가 획기적인 분배정책을 펴도 그 분배된 자원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다시 자본가의 손으로 흐르게 되어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이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단기적인 경제성장 목표를 손쉽게 달성하기 위해 자본가로 향하는 파이프라인을 수리해주고 바람까지 불어 넣어준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야당과 국민의 눈치라도 보니까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나 법조인, 세무 담당자와 사회의 준엄한 감시자가 되어야 할 언론계 인사들조차 퇴직 후 자본의 편에 서서 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얻은 무형의 모든 자원을 자본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동원하는 구조가 이미 공고히 형성돼 있다는 것이 심각하다. 이윤추구를 위해 모든 것을 갖춘 자산가들과 경쟁시장에서 힘없이 싸워야 하는 기댈 곳이라곤 없는 경제적 약자와의 불균형 구조는 더욱 고착화 될 것이고 희망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중산층이 과도한 부채로 마련한 아파트 값이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청년 실업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되지 않거나, 준비 안 된 급격한 노령화가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자산 규모 순위 50~80%에 위치하고 있는 소위 중산층이 급격히 무너질 것이다.

@픽사베이

이런 상태에서 무너진 대다수인 80%의 국민은 마이너스 성장 속에 있고 경제적인 상위 20%가 10% 이상의 성장한 결과물로서 전체 경제성장 2%대를 달성한다면 성장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머지않은 미래에 80%의 약자들이 과도한 분배 격차로 ‘희망 없음’이 확실해질 때,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다면 정치민주화 투쟁보다 더 비참하고 해결 방법도 없는 지난한 과정을 겪을 것이다. 하루빨리 정책 당국자는 아무도 가지 않는 험한 길이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 분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경기침체의 답을 찾는 여정에 들어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피니언타임스=양원희]

 

 양원희

 (주)아이브인베스터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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