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지하철이 완전히 운행을 중단했다고 가정해 보자. 출퇴근 세대는 교통체증을 감수하고서라도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지하철역 가까이에 어렵게 장만한 집을 팔고 교통이 편한 동네로 이사갈 고민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편할 뿐 삶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노인들이 공원 벤치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플리커

노인 복지 외면하다간 부작용과 악영향 더 커져

‘지공거사’라면 어떨까.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65세 이상 세대 말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 멀리는 충청권의 어르신까지 서울 시내 한복판 탑골공원을 어렵지 않게 찾는 것은 순전히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노년세대가 봄이면 소요산, 겨울이면 온양온천으로 부담없는 당일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지하철 덕분이다.

사실 지하철이 영원히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가정일 뿐이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지하철 운영 주체들은 틈만 나면 운영 적자를 노년세대 무임승차 탓으로 돌리면서 요금 인상을 주장한다. 그런데 상당수 어르신들에게는 어차피 돈을 내고 타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지하철의 유료화란 운행을 중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충격이다.

노년 세대가 지하철을 타지 못하면 삶의 질 자체가 급전직하한다. 집에만 머물러 있는 어르신에게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다른 가족과 불화로 가정평화가 깨진다. 운동부족으로 건강에 악영향도 불가피하다. 삶의 의욕을 잃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이다. 무료 지하철에 들어가는 복지 비용을 아낄수록 더 많은 복지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 세상이치다.

문제는 난관을 뚫고 탑골공원에 가도 즐길거리는 없다는 것이다. 수천명의 어르신이 모여들건만 문화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바둑판이며 장기판이 고작이다. 물론 탑골공원에서 멀지 않은 서울노인복지센터의 프로그램은 언제나 성황을 이룬다. 하지만 많은 어르신이 몰리면서 일찍부터 길게 줄을 서지 않으면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이렇듯 노년 세대를 위한 복지 정책은 있으되 문화 정책은 없다.

사실 노년 문화라는 개념은 친숙하지 않다.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노년 문화란 배부른 이야기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기초연금 제도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65세 이상 어르신의 소득하위 70%에게 최고 20만2600원을 지급하는 제도가 기초연금이다. 많지 않은 액수지만 기초연금 이전과 기초연금 이후는 분명 다르다. 거친 먹거리일 망정 굶는 어르신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밥이 해결된 다음 노년 세대에 필요한 것은 문화다.

지난달 2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2015 실버문화 페스티벌’에 참가한 노인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포커스뉴스

노인 문화정책은 찾아 보기 어려워···노년 세대의 표심 의식해야

하지만 국가 문화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직제에 노년 문화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문화예술정책실 문화정책관 산하 지역전통문화과에 직원 한 사람이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 직원은 문화의집 관련 업무와 복합문화커뮤니케이션 조성사업, 문화자원봉사 지원 사업, 지역문화 진흥사업도 맡고 있다. 노년 문화 정책을 입안하기는 커녕 몇가지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라는 것은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문체부 조직에는 어린이 문화 담당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산하기관에서 관련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노년 세대 문화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 어린이박물관이 있고, 중앙박물관 산하 지방 박물관에도 어린이박물관 기능이 있다. 국립극장은 ‘어린이 예술학교’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국립국악원도 어린이예술단을 운영하는가 하면 다양한 어린이 국악체험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2년 대선을 두고 ‘보수가 승리할 수 밖에 없었던 선거’라는 시각도 있다. 어느 나라 유권자든 나이들면 보수화하는 것은 공통된 현상인데, 지난 대선을 계기로 우리도 그런 인구 분포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맞건 틀리건 다음 대권의 향방 역시 노년 세대의 표심에 달려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여야 모두 문화로 노년 세대의 마음을 얻어야 할 때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으니 노년 문화는 지금 무주공산이 아닌가.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동철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국립민속박물관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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