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의 활쏘기]

[오피니언타임스=박영균] 서울 남산의 북쪽 산책길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백범광장과 남산도서관에 이르는 길은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져 시원한 그늘을 제공합니다. 가을 단풍과 한 겨울의 설경도 일품입니다. 경치를 즐기며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쯤 지나면 어느새 백범광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산책하는 시민들이 많지 않았으나 지금은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국립극장을 출발하자마자 왼쪽으로 소나무 숲을 지나면 오른편에 활터 석호정을 만나게 됩니다. 석호정은 생긴지 385년이나 되었고 서울에서는 가장 오래된 활터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양반뿐만 아니라 양민에게도 활쏘기가 허용되고, 무과 선발 인원이 늘어나면서 서울에만 수십 개의 활터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총이 등장하면서 무기로서 활의 수명이 다하고, 일제 지배 이후에는 그나마 남은 활터도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석호정은 한국전쟁 이후 장충단 공원에 재건했다가 남산터널 건설로 1970년대에 국립극장 뒤 현재의 자리에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해방 직후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석호정을 방문한 사진이 최근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의 방문 사진으로 미루어 석호정 등 전통 활터가 독립운동 자금과 관련이 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는 석호정 외에도 사직동에 황학정이 있습니다. 황학정이 고종이 만든 왕실 활터라면, 석호정은 민간인들이 활을 연습하던 곳입니다. 아마도 근처에 살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석호정 근처에서 활쏘기를 연습했을 수도 있겠지요.

385년 역사의 석호정은 남산르네상스 정책에 밀려 폐쇄될 뻔 했다. ©서울 중구청

남산르네상스에 철거될 뻔 했던 석호정

385년이나 된 석호정은 몇 해 전에 헐릴 뻔 했습니다. 2006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이어 당선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남산르네상스 정책을 내세우면서 석호정을 비롯한 남산의 체육시설을 폐쇄한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남산에 관심이 많았던 건지, 아니면 대통령에 도전하기 위해선지 모르겠으나 리틀야구장 테니스장 베드민턴장과 석호정을 이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석호정은 구파발 부근의 은평뉴타운 근처로 옮기고 리틀야구장과 테니스장도 각각 이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시중에는 이런 얘기들이 돌아다녔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에 성공해서 대통령이 되었던 것처럼 오세훈 시장도 서울에 길이 남을 사업을 추진 중인데, 그것이 바로 남산과 한강의 르네상스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한강르네상스 정책의 상징은 유명한 ‘세빛섬’. 남산르네상스는 뚜렷한 상징물은 없으나 남산 산책길에 시냇물이 흐르게 하고, 아스팔트길에 우레탄을 깔아 푹신푹신하게 만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 전 시장은 남산과 한강의 르네상스 정책을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추진했습니다. 이 바람에 석호정과 리틀야구장은 철거 직전까지 몰리다가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 사건으로 중도에 물러나는 바람에 폐쇄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르네상스란 부활과 재생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는데, 오 전 시장은 오래된 것을 폐쇄하고 없애는 일을 르네상스라고 불렀으니 말이지요.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세훈 전 시장이 폐쇄하기로 했던 석호정과 리틀야구장을 보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연한 결정입니다. 오랜 문화재를 보존해야 옳은 일이지요. 석호정은 지금 서울의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한양도성과 함께 문화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서울역 고가도로 회현역 일대 진입부 전경. 1970년 개통된 이 도로는 지난 13일을 끝으로 폐쇄돼 시민 공원으로 새 단장에 들어갔다. ©서울시

서울역 고가도로, 재생인가 폐기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역 고가도로에 고가 공원을 만들기로 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박 시장은 서울 근대화의 상징인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지 않고 공원화하려고 합니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처럼 공중 공원화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남대문 상인들을 비롯한 일부 주민들이 주변 교통체증과 상권 악화를 이유로 강력 반대하고 있습니다. 철도를 책임지는 코레일도 안전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12월 13일 서울역 고가도로가 폐쇄되자 부근에서는 교통체증이 심해졌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서울 곳곳에 세워졌던 고가도로는 이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도시 재생이라는 정책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재개발 뉴타운 사업이 하나 둘 취소되는 것도 도시재생 차원입니다. 서울역 고가도로 철거와 공원화, 둘 중 어느 쪽이 올바른 도시 재생일까요?

정치인들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권력가들은 거대 건축물을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거나 권력의 정당성을 미화한다고 합니다. 건축물을 동원해 정적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길을 찾는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파리 입성후 처음 동행한 사람은 건축가였다고 합니다. 총통 관저를 짓는데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고 하지요.

르네상스, 도시재생 모두 좋은 말이고, 멋진 구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호 아래 우리가 살고 있는 골목과 마을이 일률적으로 사라지거나 재가공 되어도 괜찮은 걸까요? 비록 하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작은 길 하나에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역사적 유물이 사라지고, 서울의 길과 강물 방향이 달라진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쓸모없고 흉물스러운 모습을 친환경적이고 친시민적인 것으로 바꾸고, 역사와 사연을 보존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박영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전 한국경제·한겨레 기자 

 전 세계미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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