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안철수 의원이 지난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것은 개인으로서는 실패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성공에 가깝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앙일보, 리얼미터,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에서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느 당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안철수 신당’이라고 답한 사람이 각각 18.6%, 16.5%, 16.4%나 됐다.

리얼미터가 21일 발표한 12월 3주차 여야 차기 대선 지지도 조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전주 대비 1.5%p 하락한 20.3%로 2위 문재인 대표와의 격차가 오차범위(±1.8%p) 내로 좁혀졌다. 안철수 의원은 지지층이 결집하며 3.4%p 오른 13.5%로 3위에 올라섰다.©리얼미터

안 의원 탈당으로 존재감 확인

한국갤럽이 조사한 ‘차기 대선 야권 후보 선호도’ 문항에서도 ‘존재감’이 나타났다. 새정치연합 지지층에서는 문재인 대표와 안 의원이 각각 58%와 34%를 얻어 문 대표가 앞섰다. 하지만 무당층에서는 안 의원과 문 대표가 35%와 29%로 안 의원이 이겼다. 특히 호남에서는 안 의원 48%, 문 대표 27%로 더 큰 차이가 났다. 탈당에 대해 ‘안 책임론’과 ‘문 책임론’이 분분했지만 여론은 안 의원을 무책임하다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판정한 셈이다.

‘안철수 신당’은 여권 지지층까지 일부 흡수했다. 새누리당도 안 의원이 탈당한 이후 지지율이 10%포인트나 떨어져 비상이 걸렸다. 무소속이 된 안 의원은 15일 고향 부산을 방문해 “집권을 하려면 외연을 넓히는 게 필수다. 지금의 야당처럼 다른 사람을 적으로 삼는 폐쇄적인 사고로는 집권할 수 없다. 합리적 개혁적 보수라면 함께 손잡고 나갈 생각이다”라고 했다. 인물 영입 3원칙으로는 반(反)부패, 반(反)이분법, 반(反)수구보수를 제시했다. 반 새누리당, 비 새정치연합의 중도 신당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동안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비판을 받았던 ‘안철수 새정치’의 핵심도 여기에 다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기자회견 전 인사를 하고 있다.©포커스뉴스

양당 구도 속 중도 신당 쉽지 않을 것··· 여당의 비대화도 걱정

하지만 중도 신당의 세력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양당 구도는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유권자들은 평소에는 다양하게 의견을 표출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정권만은 넘겨줄 수 없다거나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양당으로 결집한다. 지금 새누리당 국회 의석이 157석 53.4%, 새정치민주연합이 126석 42.86%로 합하면 전체의 96.26%나 된다. 양당의 간판을 내걸지 않고서는 국회의원 당선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지금까지는 영·호남에서 각각 여야의 공천을 받기만 하면 국회의원은 따논 당상이나 다름 없었다. 사정이 이러니 여야 모두 당 내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 개발과 경쟁은 하지 않고 ‘공천 전쟁’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안 의원으로서는 3김 같은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틈바구니에서 ‘충청도 핫바지론’을 내세우며 지역세를 결집했다. 김 전 총리 역시 충청도라는 지역 기반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정치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 생명을 걸고 안 의원을 따라 탈당할 국회의원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탈당은 신당의 공천으로 아니면 무소속으로라도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에나 결행할 수 있다. 안 의원 개인에 대한 선호도와 ‘안철수 신당’ 후보에 대한 선호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안 의원의 경쟁력이 가라앉지 않고 ‘안철수 신당’이 현실적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스펙트럼이 다른 정치세력의 등장은 환영할 일이라고 말하지만, 현재와 같은 권력 구도와 투표 성향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안 의원의 중도 세력화는 새누리당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4월 13일 총선에서 범야권 지지층이 새정치연합과 ‘안철수 신당’으로 나뉘면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크게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여당 후보 1명에 야당 후보 2~3명이면 야당 후보의 패배는 당연하다. 그렇게 되면 정부와 여당의 전횡과 독주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안 의원 측은 새누리당 지지층을 자신의 표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 지지층 가운데 안 의원을 선호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더라도 막상 선거를 하게 되면 새누리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야권 유권자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안 의원이 야당 표가 아니라 여당 표를 크게 잠식할 것으로 보이면 범여권은 ‘안철수 죽이기’에 돌입할 것이다.

@포커스뉴스

야권 지지층, 누구라도 ‘한알의 밀’ 되기를 기대할 것

정치 지도자가 대권의 꿈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면 그 꿈은 스러질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국민의 바람을 결집하고 대변하는 데서 나온다. 무엇이 이 시대의 표징인지, 무엇이 국민을 어렵고 아프게 하는지 살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가 ‘헬조선’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지난 10월 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이 확대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안 의원은 희망의 정치인이다. 엘리트 의사 출신의 안랩의 창업주로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라는 화려한 경력에다 사회에 대한 헌신과 기부로 ‘안철수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2011년에는 서울시장 후보를, 2012년에는 대통령 후보를 양보한 ‘정치 기부자’였다. 벌써 안 의원을 포함해 야권이 총선 전에 뭉쳐야 산다는 얘기가 나온다. 야권 지지층은 문재인 대표를 포함해 야권의 지도자 누구라도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데 한 알의 밀로서 자신을 던지기를 바랄 것이다. 안 의원이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타오르게 하는 정치인으로 살아 남았으면 한다.[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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