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고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11월 26일 새로 제정된 국가장법에 따라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타계한 7명의 대통령 중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등은 서울 현충원에, 최규하 대통령은 대전 현충원에 각각 안장됐다. 나머지 윤보선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에 묻혔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대통령 등 생존해 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과, 현직의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무수한 미래의 대통령들이 국립묘지와 선영 가운데서 자신이 묻힐 곳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안장식이 엄수됐다. 김 전 대통령의 묘지터 위로 눈이 내리고 있다. ©포커스뉴스

현충원 선호하는 우리나라 대통령들, 윤보선 노무현만 고향에 묻혀

종전의 ‘국장과 국민장에 관한 법’이 ‘국가장법’으로 통합된 배경은 장례의 차별성에 관한 논란 때문이었다. 최초의 국장은 현직에서 별세한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였고,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가 ‘변칙’ 국장으로 치러졌다. 국민장은 대체로 전직 대통령이나 사회 저명인사의 장례에 적용됐다. 차이는 묘지의 크기와 장례비용의 국고부담, 장례기간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차이를 일시에 없애버려 적멸(寂滅)의 상태로 돌린다. 그러나 인간에겐 죽음이 가져오는 망각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와 공포, 그리고 동시에 잊혀지지 않기 위한 욕망이 있다. 조선조 왕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전통으로 빛나는 나라가 한국이다. 현충원의 대통령 묘역도 그 언저리에 있다.

서울 현충원 대통령 묘역에 더 이상 모실 터가 없다는 이유로 최규하 대통령은 대전 현충원으로 모셔졌다. 그러나 그 뒤 두 김 대통령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됐다. 장묘의 격을 둘러싼 정치적 억지가 스며있다. 천하의 명당이니 공작 알이니 하는 얘기들도 그래서 나온다.

구미 선진국의 장묘문화는 기독교 부활신앙의 영향으로 매장을 선호한다. 그러나 묘소의 크기나 치장물로 다른 주검과 차이를 두려고 하지는 않는다. 묘지의 면적도 같다. 국립묘지에 가면 대통령도 사병과 같은 면적의 땅에 눕는다. 그러니 국립묘지 대신 고향 땅을 선호한다.

생몰 연대와 이름만 새긴 비석과 함께 고향에 묻혀 있는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묘소가 그런 검박한 묘소의 전범처럼 일컬어진다. 미국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존 케네디 대통령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그의 무덤에는 생몰 연대와 이름만 새긴 비석이 전부다.©위키피디아

선진국에선 검박한 무덤에 크기 차이 없고 고향에 묻히는 사례 많아

퇴임 후 낙향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그런 외국의 대통령들의 은퇴 후의 모습을 떠올렸었다. 훗날 그가 세상을 뜨면 경남 김해에도 드골의 묘와 같은 검박한 묘소가 생기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가 불의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함에 따라 ‘화장한 뒤 봉분 없는 묘 앞에 작은 비석하나 세워달라’는 유언과는 달리 묘소는 성역화 되고 커졌다.

채명신 장군의 예도 있다. 그는 살았을 때처럼 죽어서도 사병들과 함께하기를 소원했다. 그래서 장군묘역이 아닌 사병 묘역에 묻혔다.

국가장법에는 예고된 논란도 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별세할 경우 5·18특별법에 따른 단죄의 전력으로 인해 두 사람의 장례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은 불가피하다. 국가장법 2조는 ‘국가장의 대상은 전·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또는 국가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추앙을 받는 사람’으로 규정돼 있어 그들이 대상자임은 분명하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립묘지 안장의 경우에는 논란이 가중될 것이다. 보훈처 안장대상심의위원회의 금고 이상형이 확정된 사람에 대한 ‘명예성’ 심사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장 대상 인물에 대한 명예성 심사는 상정되지 않는 게 관례여서 상정해서 부결시키라는 여론이 거셀 것이다.

중국의 정치지도자 등소평의 모습. 그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바다에 뿌려졌다.©플리커

주은래 등소평은 화장 유언해 강·바다에 뿌려져, 김일성 부자는 미라로 남아

우리의 국가장 제도에 개선의 여지는 없을 것인가? 국민의 80%가 화장을 선호하고, 수목장, 납골묘 등 묘지 없는 장례가 큰 흐름이다. 여기서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과 주은래 총리의 장례를 생각한다. 두 사람은 화장해서 산골장(散骨葬)을 해달라고 유언했다.

양자강변의 강소성 출신인 주은래의 재는 중국 대륙의 젖줄인 양자강에 뿌려졌고, 등소평의 경우 대해(大海)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가 평생 염원했던 중국통일의 상징인 본토와 홍콩, 본토와 대만 사이의 해협에 뿌려졌다.

한반도는 분단의 한이 서린 땅이다. 남북은 지난 70년 동안 대결만 벌였지 통일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많은 대통령들이 통일을 위해 노력했고, ‘통일 대박’은 현 정부의 역점정책이다. 그렇지만 ‘내가 죽거든 내 재를 휴전선에 뿌려달라’고 유언한 대통령은 아직 없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우리의 전통 장례에도 어긋나는 방식으로 미라처리 돼 금수산 궁전에 누워있다. 그들이 생생한 주검으로 증언하고 있는 죄업은 6·25전쟁을 비롯 동족을 향한 숱한 악행과 도탄에 빠진 북한의 민생이다. 죽었으면 흙으로 돌아 갈 것이지 어리석은 인생들이다.

등소평은 모든 것을 깨끗이 버리고 갔으므로 천하를 얻었다. 우리도 그런 지도자를 보았으면 좋겠다.[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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