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꼼꼼세설]

썰렁개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는 수준 높은 유머라고 주장하는데 정작 듣는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뭔 말인지 모르는 까닭이다. 다들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면 답답하다는 듯 이런저런 뜻이라고 설명한다. 혼자 열을 올리면서. 사람들은 그제서야 무슨 얘기인지 알고 “아∼” 하지만 기껏해야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이다. 썰렁하다고 해도 그만두지 않는다. 오히려 고급 유머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안타깝다며 가슴을 친다.

썰렁개그처럼 “뭔소리?”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정부 3.0 홍보 포스터©안전행정부

정부 정책은 유머와 마찬가지로 단박에 알아챌 수 있어야

유머와 개그의 목적은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다.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듣는 순간 박장대소할 수 있어야 유머요, 개그다. 배꼽을 잡거나 무릎을 치게 만들면 대박이요, 억지웃음이라도 짓게 해야 본전이다. “뭔 소리?”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남들은 어떤가 주위를 둘러보게 하면 그건 이미 유머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 구호도 다르지 않다. 국민들이 듣고 보는 순간 뭔 소린지 단박에 알아채야 구호로서의 의의와 가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의미심장한 뜻을 담아 독특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국민 대다수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선뜻 이해하지 못하면 심오한 의미도, 그럴 듯한 용어도 소용없다. 정부의 정책 구호는 유머처럼 남녀노소, 학력에 관계없이 한번 보면 금세 ‘아하∼ 그렇구나!’ 할 수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 3.0’은 그런 점에서 아쉽다. 정부 3.0은 박근혜정부가 ‘신뢰 받는 정부, 국민 행복 국가’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설정한 정부 운영 패러다임이다. 목표는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다. 실천 방안은 ‘개방·공유·소통·협력’이다.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소통·협력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에 대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읽고 또 읽으면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순 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만 3년이 코 앞인 지금 우리 국민 가운데 정부 3.0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부 3.0을 실천해야 할 공무원은 어떤가. 시험 공부하듯 외워야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의 구호는 구호라고 하기 어렵다. 정부 3.0이 나오려면 ‘정부 1.0’과 ‘정부 2.0’이 있었어야 한다. 1.0과 2.0을 들어본 적 없는 이들에게 3.0을 들이대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많은 시민들이 이상하다는데도 밀어붙이고 있는 서울시 새 브랜드 I.SEOUL.U @서울시

이제 와서 ‘정부 3.0’ 홍보 열 올리는 건 안쓰러워

홍보가 안돼 실천이 제대로 안된다 싶었을까. 정부 운영의 새 패러다임이라면서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뒤에야 홍보에 열을 올리는 건 안쓰럽다. ‘투명하고 유능하고 서비스하는 정부?’ 당연하기 이를 데 없는 목표다. 하지만 인허가 사업의 경우 여전히 담당 사무관 한 사람이 쥐락펴락하면서 미루고 또 미루기를 밥 먹듯 하는 게 현실이다.

말로는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최고의 복지라면서 실제론 인허가권을 내세워 면세점 사업권을 갈아치운 통에 한겨울에 실업자가 쏟아지게 만든 것도 현실이다. 이런 판에 ‘개방·공유·소통·협력’을 앞장세운 정부 3.0이 설득력을 지닌다고 믿는 이들은 누구인가. 구호는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쉽고 단순한 것이 좋다. 너무 많아서 기억하기 힘든 추상적인 말 10가지나 정부 3.0 같은 어려운 말보다 ‘공정한 정부’처럼 쉽고 의지하고 싶은 말 한 가지가 낫다.

정부 3.0. 만든 이들에겐 백서에 남길 근사한 말인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이상하다는데도 밀어붙이곤 홍보하느라 세금을 쏟아붓는 서울시의 ‘I.SEOUL.U’보다야 백번 낫다 싶지만. [오피니언타임스=박성희]

 박성희

  전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한국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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