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시간은 전세계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때에 따라 그 길이가 다르다.©픽사베이

시간은 선(線)이다. 그 위에 작은 눈금으로 경계를 만들었다. 선은 흐름이고, 질서이고, 논리이다. 시간의 질서와 논리가 인류의 역사를 만들었고, 사고를 규정했다.

선은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 건너뛸 수도 없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나 ‘터미네이터’나 ‘백 투 더 퓨처’처럼 미래와 현재,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는 시간여행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누구도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흐름의 속도를 높이거나 늦출 수도 없다.

동양에서는 시간을 원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원은 순환이고 윤회이다. 2015년은 다시 오지 않지만, ‘을미년’은 60년 뒤에 돌아온다. 선과 달리 원은 거스름 없이 지나간 자리로 다시 갈 수 있다. 과거도 미래가 된다. 그래서 이창동 감독은 한 젊은이가 20년 전의 꿈과 희망의 자리로 돌아가는 영화 ‘박하사탕’을 만들면서 “모든 과거는 지나간 미래”라고 했다.

사다리조차 없는 절벽 아래 주저앉은 수많은 3포세대, 잉여세대들 ©포커스뉴스

‘시간’은 공평한가

시간은 차별이 없다. 어느 곳, 누구에게나 1초는 같다. 물리적인 속도도 불변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저 은하계 어디엔가는 지구보다 수 천 배 느린 시간이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아직까지는 상상에 불과하다. 설사 그런 곳이 있다 해도 갈 수 없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 모두가 간다면 역시 그곳의 1초도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마다, 때에 따라 그 길이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하루가 너무 짧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가 너무나 길다. 어느 순간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늦다. 시간은 때론 느낌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분단 55년보다 남북정상회담이 연기 된 하루가 더 길었다”는 어느 장관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다. 인간은 하루를 일 년으로 살기도 하고, 일 년을 하루처럼 살기도 한다. 물리적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느끼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시간의 구분도 그렇다. 마치 강물이 흐르듯 시간은 본질적으로 경계가 없다. 이를 굳이 길이를 재어 시간, 일, 월, 년이란 수학적 단위로 토막 낸 것은 어느 순간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흐름의 한 순간일 뿐인데도 연말이 되면 1년을 되면 되돌아보고, 새해가 되면 새로운 다짐으로 출발한다. 어쩌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시간의 경계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우리를 배신하더라도.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금오산 일출. 병신년 새해에는 희망이 떠오를까.©포커스뉴스

‘시간’은 희망인가

‘병신년’이 시작됐다. 누구는 기대로, 누구는 두려움으로 시간의 경계 앞에 설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사다리조차 없는 절벽 아래 주저앉은 수많은 3포세대, 잉여세대.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최근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어서라”고 외치지만, 그들은 분노할 마음마저 이미 잃어버렸다. 세계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대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이나 희생보다는 자기 몸돌보기부터 서두르는 현실에서 그들에게 새로운 1년은 어떤 느낌일까.

그들의 아버지들은 어떤가. 베이비붐세대로 젊은 시절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나이 들면서는 자식 뒷바라지에 시달리느라, 아직 갈 길은 먼데 가진 것 없이 갈 곳 없이 절벽 끝에 서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그들은 현재도 다가올 미래의 시간도 길고 긴 고통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렵고 불안한 아버지와 꿈과 미래가 막힌 아들. 취직을 포기하고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들과 그런 자식을 꾸짖지도 도와주지도 못하는, 자신도 언제 벼랑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아버지. 이들에게 병신년이 ‘희망’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도 시간이 공평했으면 좋겠다.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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