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 속으로]

지난달 28일, 자유언론실천재단 송년회에 참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송년회처럼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소리로 왁자지껄하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비장감이 바닥에 깔려 있다. 왕년의 해직 언론인들, 그리고 현재의 해직 언론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재단은 오늘의 언론 현실을 1974년 동아일보에서 시작한 ‘자유언론실천’ 정신으로 타개하고자 2014년 10월 설립한 단체다. 20여 회원 단체가 있다.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고 비판 받는 언론들@픽사베이

언론은 ‘사회적 흉기’로 변했다

재단 출범식 날 김종철 이사장은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과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지금처럼 언론이 정권 하수인 노릇을 철저히 하며 국민을 두 갈래로 분열시키고, 오로지 정권과 결탁해 수구 기득권에 편입된 적이 없다”고 했다. 보수 메이저 신문과 종편 방송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들 언론이 ‘폭력’으로, ‘사회 흉기’로 변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나라는 국가적 대형 어젠다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세월호 침몰로 300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사망·실종한 원인을 둘러싼 논란, 전남 순천에서 이상한 형태로 발견된 한 시신과 참사의 배후 책임자로 지목된 유병언의 관련성을 둘러싼 의혹,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을 내린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논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 문제 등 굵직한 것들만 꼽아도 숨이 찰 정도다. 어떤 의혹과 이슈도 속시원하게 진상이 밝혀진 것은 없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밴드 왜건으로 철저하게 하수인 노릇을 했다.

‘바보상자’를 넘어 ‘침묵의 상자’가 돼 버린 TV@픽사베이

침묵의 상자, TV

종편을 제외한 지상파 TV는 ‘바보상자’를 넘어 아예 ‘침묵의 상자’가 돼 버렸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체포를 톱으로 다룰 때는 민주노총과 조계종 화쟁위원회를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이 사태를 유발한 노동관련법 개정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14일부터 열렸던 세월호 청문회는 김동수 자해 시도를 제외하고는 단신으로만 겨우 다뤘을 뿐이다. TV만 보고 있으면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유럽연합(EU)는 언론의 궁극적인 목표가 ‘정보화된 시민(Informed Citizen)’의 형성에 있다고 언론헌장에 명시하고 있다.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아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어젠다에 대해 자신의 독립적 의견을 가진 의식화된 존재로서의 ‘시민’ 형성에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언론이 제시하는 어젠다와 담론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공공적 문제나 갈등 해결에 당사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는 구조다.

풀려버린 녹음 테이프, 심층탐사 저널리즘의 실종@픽사베이

심층탐사 저널리즘의 실종과 오락화

우리 모두가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의제는 무엇이고,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역할은 TV에서 시사보도, 토론, 심층탐사 프로그램이 담당한다. 과거 TV는 중요한 의제를 빠짐없이 다루려 했고, 권력이 감추고 싶어하는 자료를 찾아내거나 위험한 취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성역과 금기에도 도전했고 첨단적이고 심층적인 분석도 곁들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추적 60분, PD수첩, 시사기획 쌈, 100분 토론, 심야토론 등이 그런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점점 편성에서 제외되거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자는 방송 내용을 문제삼아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고, 지방이나 비제작부서로 전보되고 있다. KBS와 MBC에서 공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MBC는 이런 류의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던 교양제작국을 아예 해체해버리는 비상식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해고된 기자와 PD들은 대안언론을 찾아 나서고 있으나 대부분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고 영향력도 미미한 수준이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소재주의로 흐르거나 연성화의 길을 걷고 있다. 가십거리로나 다룰 소재를 확대해 다루거나 구조적 원인은 제쳐둔 채 사회적 문제를 흥밋거리로 다루거나 하는 식이다. 오락적 기능과의 장르 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썰전’이나 ‘쿨까당’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사안을 총체적이고 구조적으로 보기보다는 사안의 특정 부분에만 집중해 미묘한 프레임 착종을 유도한다. 김무성 사위 마약사건에서 팟캐스트 ‘정치카페’는 청와대와 김무성의 ‘권력 투쟁’ 프레임으로 접근한 반면, ‘썰전’은 ‘딸바보’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사회적 의제에 눈 가리고 귀 막은 건 신문도 마찮가지 @픽사베이

환상의 섬으로 존재하는 TV

사회적 어젠다를 다루는 대신 이제 TV는 온통 시츄에이션 코미디나 퓨전사극, 웹드라마같이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스낵 컬처에 열중하고 있다. 상업 TV가 판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하우스 오브 카즈’, ‘타이런트’ 같은 정치 드라마, 언론의 현실을 정면으로 문제삼는 ‘뉴스룸’ 같은 드라마가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예능 오락 장르로 가면 다양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화려하다. 대중가요 부르기 시합, 리얼 버라이어티로 포장한 놀이, 맛있다는 음식점 찾아 다니기, 요리하기, 애 키우기, 외국인들의 잡담으로 TV는 정신이 없다. 출연 섭외가 가장 힘든 사람이 셰프 직종이고, 초등학생들의 장래 꿈 1순위가 연예인이다. 고액을 보장하는 스카웃 대상도 이들 장르의 제작자들이다. 5공화국이 기획 집행했던 3S 우민정책과 다를 바 없다.

TV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멀리 떨어져 환상의 섬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사보도와 심층탐사 저널리즘이 멸종한 탓이다. 스낵 컬처적 프로그램이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들은 한류를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부문간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픽사베이

SNS는 ‘바보 네트워크’인가

사태가 이에 이르자 SNS가 언론과 뚜렷하게 대립각을 이루었다. 언론을 불신하면서 스스로 콘텐츠 생산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주요한 정치사회 현안을 언론이 아니라 SNS를 통해 먼저 접하고 소비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기사를 링크하고 댓글을 다는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고,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찾으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산적한 문제에 대해 나와 맞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미디어 비평가는 이를 ‘바보 네트워크’라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우리 공동체의 주요 의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심층적인 분석은 SNS 시대에도 중요하다. ‘정보화된 시민’을 기반으로 한 공론장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깨어나라 자유언론!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재작년 말, 동아투위 103명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모호한 이유로 이를 기각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시사보도, 시사토론, 심층탐사 저널리즘을 실천하다 해직된 언론인들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트렌드의 변화도 이에 가세했다.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한다’. ‘깨어나라 자유언론!’. 자유언론실천재단이 내세우는 캐치 프레이즈다. 병신년 송년회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까.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