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한류]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K-pop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프랑스 현지에서 프랑스인이 본 한류의 현장과 의미를 연재한다.

필자 스테판 쿠랄레는 INALCO(파리 동양문화언어대학교)에서 ‘한국 국가 이미지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EHESS(파리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언어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보르도 몽테뉴 대학(ubM)에서 한국학과장 부교수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이 글은 2011년 10월부터 그가 오피니언타임스에 연재한 글을 다듬은 것이다.

“스테판, ‘꺄뽑’[1]이 뭐야?”

엑상 프로방스에 사시는 어머니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흥분된 목소리로 던진 질문이다. 그 ‘꺄뽑’ 때문에 프랑스 젊은 애들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과 함께… 저녁 뉴스에서 케이팝 공연에 대한 프랑스 젊은이들의 열광을 보도한 것이었다. 이 ‘기이한 현상’에 프랑스 대중 매체들도 적지 않이 놀란 모양이었다.

아이돌그룹 엑소가 지난해 9월12일 중국 충칭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포커스뉴스

프랑스 기자들은 케이팝이 순전히 상업적 전략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미국 음악과 극도로 서양화된 일본 문화의 중간 혼합물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국 정부가 외국에서의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적극 지원하는 상품 산업에 불과하다는 비아냥거림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돈이 없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문화적 소양이 없는 것은 부끄러워한다. 이토록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의 눈에 지나치게 상품화되어 보이는 케이팝이 프랑스 젊은이들을 매혹하는 현상이 그리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케이팝 팬들은 이런 부정적 시선에 강렬하게 항의하고 케이팝과 한국을 옹호한다. «케이팝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신선한 공기와 같다»고.

프랑스에서 한류는 몇년 전부터 영화를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가수 르노의 노래 «보보스족BOBO[2]»에도 한국 영화가 언급된다. «보보스족은 일본 식당과 한국 영화를 즐기고…»라는 노랫말을 보면 한국 영화는 프랑스 사회의 신상류층이 소비하는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한 한류행사에서 터키 여성들이 K-POP 공연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포커스뉴스

반면, 최근 무료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급속히 파급된 케이팝은 훨씬 대중적이다. 메트로나 버스에서 케이팝을 듣고 있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새로운 것을 찾고 배우고 싶은 목마른 젊음이 케이팝에 열광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할류우드hallyuwood»인 한국으로 갈 계획을 세운다.

내가 강의하고 있는 파리 Inalco대학 학국어과의 신입생이 200명이 넘는 것도, 한국어과에 등록한 이유가 수퍼주니어나 자신들이 좋아하는 K-pop아이돌 때문이라는 얘기도 이제 내게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나의 거래 은행 직원은 바캉스를 한국으로 간다고 했다. 그녀 역시 케이팝 팬이었다. 인사만 하고 지내던 이웃도 알고보니 한국 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이처럼 내 주변부터가 케이팝의 공격(‘르 몽드’지의 표현을 빌자면)에 포위당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만 K-pop이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상품이 아닌 문화적 현상으로 인정되고 정의되려면 지속적인 아이디어 창출과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저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럽 젊은이들의 열광을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케이팝을 최종적 상품으로 보는 이들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들은 그 중요성을 이해한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서양과 동양이라는 벽을 허물고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을 발견하는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스테판 쿠랄레]

[1] K-pop의 프랑스식 발음
[2]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합성어: 부르주아의 물질적 풍요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자유를 누린다는 «새로운 상류층»을 이르는 말

 스테판 쿠랄레(Stéphane COURALET)

  프랑스 몽테뉴대학 한국학과장 부교수

  저서 ‘한국어에 있어서의 집단 인칭, 우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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