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5대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의 핵 카르텔에 대한 도전이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이 이 카르텔에 도전해 2급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 밖의 도전국 가운데 리비아와 남아공은 오래전에 포기했고, 이란도 작년 7월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해 포기했다.

핵개발 논란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후세인(왼쪽)과 카다피©픽사베이/플리커

김정일, 후세인과 카다피 핵무기 없는 탓에 죽었다고 믿어

이라크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심만으로 미국의 공격을 받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고, 후세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후 미국은 이라크에서 핵개발의 흔적을 찾아 나섰으나 끝내 못 찾았다. 후세인의 죽음은 핵의 망령에 의한 죽음이었다.

미국과 적대하며 핵개발을 추진하던 리비아의 권력자 무아마르 카다피도 2003년 핵개발을 포기했고, 2006년 미국과 수교했지만, 2011년 아프리카 중동 지역을 휩쓸었던 자스민 혁명의 와중에서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후세인과 카다피의 처참한 말로에 누구보다 전율한 사람은 당시 북한의 국방위원장 김정일이었다. 김정일은 두 사람의 죽음은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핵무기에 대한 그의 집착은 더욱 깊어졌다.

당시 후계연습 중이었을 김정은도 그런 사실만큼은 다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집권 5년차에 접어든 그가 2013년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핵실험을 감행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7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의 조선인민군 제7차 사관교육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신화/포커스뉴스

2급 핵보유국 인정 여부는 친서방과 지정학적 여건에 따라 결정

2급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를 가르는 기본적 차이는 친서방(親西方)의 정도와 지정학적 여건이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핵보유는 핵개발 시도국가들이 자국에 가해지는 미국의 압력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주된 근거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지배한다는 유태인의 나라이고, 지정학적으로 적대적인 이슬람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슬람 세력의 공격에 대한 예방적 또는 방어적 수단으로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인정해 보유를 묵인한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핵무기가 결코 서방국가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바탕하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과거 양국 간 국경분쟁의 여파로 시작됐으나 현재 분쟁은 완화돼 핵무기의 사용 또는 확산의 여지가 적어져 지정학적 위험도 덜어졌다.

남아공도 백인정부 시절 적대세력인 흑인국가들로 둘러싸였을 때 핵무기를 개발했다. 서방국가들은 이스라엘과 흡사한 남아공 백인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핵무기 보유를 묵인했다. 그러다 넬슨 만델라의 흑인정부가 들어서 지정학적 여건이 바뀌자 남아공 스스로 핵무기를 폐기했다.

반면 리비아의 핵개발은 이스라엘과 지중해 건너의 유럽 국가들에게 위협이었으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1986년 미국은 장거리 폭격기를 동원해 카다피의 집무실을 공습하기도 했다. 카다피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 핵개발을 포기했으나 자스민 혁명이 일어나자 서방세계는 재빨리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란의 핵개발도 리비아의 경우와 성격이 같다. 이스라엘이 주요한 타격 목표이고 유럽에도 잠재적인 위협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종교분쟁은 이란의 핵개발이 같은 이슬람권에도 위협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으로선 어떤 방법으로든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해야만 했는데 협상이라는 평화적 방법으로 그 의지를 관철했다.

@픽사베이

21세기 들어 유일하게 4차례 핵실험한 북한

현재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 있는 나라는 북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4개국이다. 북한은 NPT에서 탈퇴했고 나머지는 조약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북한의 위치는 매우 유별나다.

5대 핵보유국은 물론 2급 보유국들도 모두 1990년대를 끝으로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북한은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4번이나 했다. 그 뿐 아니라 핵무기로 한국 미국 일본을 공격해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막말도 예사로 한다. 최근에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까지 실험했다.

이번 4차 핵실험 사실을 발표하면서 북한은 “적대세력이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 관련 수단과 기술을 이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을 의식한 유화적 발언인데, 이전의 협박성 발언에 비할 때 오히려 이례적이다.

 
 
지난 10일 미 공군 B-52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날고 있다. ©공군

미국, 북 체제 좌시하지 않을 것··· 우리도 선제 공격력과 방어력 강화 필요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주장에 ‘무시 전략’이나, ‘전략적 인내’라는 수사로 대응해 왔다.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능력을 얕잡아 본 면도 있고, 선제적인 제거능력을 과신한 탓도 있다. 그러다 북한의 핵능력이 수소폭탄 실험에까지 왔다. 미국도 더 이상 무시전략이나 전략적 인내로 대응하기도 어렵게 됐다.

이라크에서는 핵무기 의심만으로도 전쟁을 벌인 미국이다. 핵무기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좌시할 수 없게 됐다. 미국에 적대하고 더욱이 동아시아에 핵 도미노를 유발할 북핵을 용인할 수는 없다. 이란 방식의 협상을 통한 해결이 최선이겠으나, 리비아나 이라크에서처럼 군사적 방법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국내적으로도 자체 핵무장론이나 미군 핵무기의 재배치론이 나오는데 공론(空論)에 가깝고, 유엔에서도 경제 제재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실효성이 없음은 이미 입증됐다. 우리 정부도 휴전선의 확성기방송을 재개했지만 김정은의 핵개발 의지를 꺾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실효성 면에선 북한의 핵시설을 무력화할 수 있는 킬 체인(Kill Chain)과 같은 선제공격력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 등 방어력 강화가 필요하다. 북핵은 김일성 이후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친 유산인 만큼 김씨 왕조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한 포기하기 어렵다. ‘레짐 체인지(정권교체)’ 전략도 보다 정밀해져야 한다.

북한 핵실험 이후 전방에 설치된 대북방송 확성기. ©합동참모본부

신뢰 담보된 北 지원책으로 6자 회담에 끌어내야

그러나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봐야할 일이 있다. 19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에 따라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넘게 함경남도 신포에서 추진하다 폐기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원전건설 사업이다.

전력은 개인 기업 국가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무기제조 만을 위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전력생산이라는 산업적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처럼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북한에서 에너지원으로 가장 절실한 것이 원전이다.

우리는 24기의 원전과 2만1716Mw의 발전설비 용량을 갖췄고, 전기공급의 30% 가까이가 원전의 몫이다. 북한은 원전 1기도 없이 영변의 5Mw의 실험용 원자로를 돌려 핵무기 원료를 추출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어찌 보면 가련한 얘기다.

한미일이 주축이 됐던 KEDO 사업은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6자회담은 그런 결함을 보완할 수 있다. KEDO의 교훈을 살려서 신뢰가 담보된 대북 지원책으로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내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수소폭탄 실험은 북한이 궁지에 몰렸을 때 써오던 벼랑끝 전술의 ‘김정은 버전’일수도 있다.[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