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지난 겨울, 어느 토요일 아침. 경기도 모 신도시에 있는 단독주택 단지에 새로 입주한 동창생을 찾았다. 오후엔 중요한 스케줄이 4개나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아침에 갈 수밖에 없었다. 대지가 200여평씩은 됨직한, 고급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는 부자동네. 마을 초입에 있는 24시간 편의점 앞을 지날 때였다.

난데없는 개짖는 소리와 함께 24시간 편의점에서 나오던 어떤 아가씨가 비명을 질렀다. 20여m 떨어진, 대문이 빼꼼 열린 어떤 집에서 뛰쳐나온 커다란 개가 밤새 알바 일을 마치고 문을 나서던 여학생을 문 것이다. 뛰어가 보니 넓적다리를 물렸는데, 청바지가 찢기고 피가 많이 나는 꽤나 큰 부상이었다.

@픽사베이

개끈을 손에 들고 어슬렁 어슬렁 대문을 나선 집주인은 개를 붙들어 끈을 묶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여학생 앞으로 나타났다.

“조심하지 않고··· 맹견주의 몰라?”

뱉듯이 한마디 던진 개주인은 만원짜리 두장인가를 내밀었다.

“약 사발라.”

여학생은 어쩔 줄 모르고 소리죽여 울고만 있었다.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여보쇼···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빨리 학생 데리고 병원으로 가시오."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개주인 남자는 째려보듯 못마땅한 표정을 내게 보낸다.

“뭘 보나? 약 사 발라? 약·사·발·라 가 대체 뭐야.”

홧김에 반말을 해버렸다. 개주인은 마지못해 알바 여학생을 부축하여 차에 태우곤 병원으로 갔다.

@플리커

동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집안이 전혀 보이지 않게 높은 담장이 쳐진 커다란 집이었다. 집이라기보다 수련시설이나 숙박시설 같이 큰 집이었다. 그러고 대문을 바라보니 ‘맹견주의’라는 패가 붙어 있었다. 예전에는 몰라도 요즘에는 보기 힘든 경고문이다. 뜨악한 기분으로 경고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집주인 눈에는 다른 사람이 온통 도둑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당장 ‘맹견주의’라는 시위성 경고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맹견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친절한 배려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맹견이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뜻이 분명한 위압적인 경고문이 아닌가 말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째서 맹견을 주의해야 한단 말인가? ‘맹견주의’는 개주인이 해야 할 일이지, 행인이 어째서 그같이 번거로운 신경까지 쓰면서 거리를 다녀야 한단 말인가. 경고문을 붙이려면 ‘맹견주의’가 아니라 ‘맹견단속’이라고 커다랗게 써서 멋지게 표구하여 대문 안쪽이나 거실 한복판에 걸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게 가당찮고 오만한 조폭 같은 수작이 어디 있냔 말이다. ‘똥개주의’, 젊잖게 ‘변견주의’라면 또 모르겠다. 혹시 ‘광견주의’라고 쓴다면 애교로 보아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맹견이란 뜻부터가 다분히 전투적이고 적대 감정이나 불신 감정을 내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된 놈의 세상인지, 사람이 사람에게 맹견과 맞서게 하고 있지 않는가. 도대체 인간중심이 아닌 맹견중심 사고를 지니고 사는 이 사람들의 머리통 속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플리커

“조심하지 않고…맹견주의 몰라.”

개주인의 이 말 속엔 알바 여학생이 피해자가 아니라 마치 자기네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함축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개야말로 물어뜯는 것이 임무이니 개주인도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알바 여학생이 잠근 대문을 부수고 침입하다가 맹견에게 물렸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영특한 개가 대문을 스윽 열고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대문을 연 건 바로 당신이나 당신 네 집 식구들이 아닌가 말이다.

이같은 ‘맹견주의사상’은 주택가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수많은 맹견주의파들이 모습과 색깔을 달리하면서 인간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모두를 숨막히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맹견주의자들아!

충고하노니, 쩨쩨하게 개가 무엇인가. 다음부터는 늑대나 곰을 풀어놓고 ‘맹수주의’라고 붙이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그것으로도 내키지 않는다면 지뢰도 묻고, 부비트랩을 깔아서 도적이나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집을 지켜라.

마음의 성을 몇겹이고 쌓고 담벼락에 유리조각을 꽂아 놓는 ‘맹견주의사상’이 퍼지면 사람들이 점점 더 서로 불신하고 눈을 흘기며 살게 된다는 걸, 아는가 모르는가.

날씨가 추운 건 참아 보겠지만 마음이 추워지는 것은 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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