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한류]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K-pop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프랑스 현지에서 프랑스인이 본 한류의 현장과 의미를 연재한다.

필자 스테판 쿠랄레는 INALCO(파리 동양문화언어대학교)에서 ‘한국 국가 이미지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EHESS(파리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언어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보르도 몽테뉴 대학(ubM)에서 한국학과장 부교수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일본의 이미 알려진 문화적 참고 기준을 거치는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소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사케’, ‘한복’은 ‘일종의 기모노’, ‘기생’은 ‘일종의 게이샤’ 같은 각주를 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국인은 일종의 일본인이라고 해야 하는지? 번역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웃지못할 농담이다.

한류와 함께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빔밥 ©픽사베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녀석 덕분에 자연스레 알게 된 또래의 학부형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비빔밥’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빔밥을 너무 좋아한다”는 그들의 말에는 이 음식이 현대의 문명인이라면 당연히 먹어봤어야 할 특별 메뉴나 되는 양 자랑스러움마저 비친다. 몇 년 전 가장 친한 친구와 한국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는데 어떻게 먹는지 몰라 포크로 재료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 가던 그 친구를 떠올려 보면 세상 정말 많이 변했다. 내 주변에 비빔밥 마니아가 이렇게 많은 세상이 올 줄이야…

한국말은 또 어떤가? 비밀을 얘기할 때는 거의 희귀 언어에 가까웠던 한국어가 적격이었는데… 갈수록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에는 옆사람이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날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여유롭게 볼일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화장실 문도 노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그 중 한 아저씨가 나를 노려보며 “나아쁜 놈! 나아쁜 놈!” 하는 게 아닌가! 빨리 좀 나오라는데 여유를 부린 프랑스놈이 괘씸했나보다.

난 손을 씻고 그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저씨! 프랑스 사람들 다~ 한국말 할 줄 알거든요. 말 조심하세요”라고 저승사자 톤으로 말했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새파랗게 질린 아저씨는 자기가 아니라는 듯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뒷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인 말고 한국말을 할 자가 그 어디 있으랴!’했던 아저씨의 ‘시대착오’였던 것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새겨진 훈민정음 서문. 언젠가는 한국어가 세계인의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포커스뉴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 해도 자기 나라의 언어를 소홀히하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어가 없는 한국문화는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사고하고 생활하며 문화를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한류라는 물결을 타고 소주는 소주로, 한복은 한복으로, 한국인은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인 한국인은 긍지를 가지고, 특히 한국인만 쓰고 말하는 ‘우리말’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한국어를 꿈꾸며 그 꿈을 이루어 가야 하지 않을까?[오피니언타임스=스테판 쿠랄레]

 스테판 쿠랄레(Stéphane COURALET)

  프랑스 몽테뉴대학 한국학과장 부교수

  저서 ‘한국어에 있어서의 집단 인칭, 우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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