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한류]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K-pop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프랑스 현지에서 프랑스인이 본 한류의 현장과 의미를 연재한다. 필자 스테판 쿠랄레는 INALCO(파리 동양문화언어대학교)에서 ‘한국 국가 이미지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EHESS(파리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언어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보르도 몽테뉴 대학(ubM)에서 한국학과장 부교수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일본의 이미 알려진 문화적 참고 기준을 거치는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소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사케’, ‘한복’은 ‘일종의 기모노’, ‘기생’은 ‘일종의 게이샤’ 같은 각주를 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국인은 일종의 일본인이라고 해야 하는지? 번역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웃지못할 농담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녀석 덕분에 자연스레 알게 된 또래의 학부형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비빔밥’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빔밥을 너무 좋아한다”는 그들의 말에는 이 음식이 현대의 문명인이라면 당연히 먹어봤어야 할 특별 메뉴나 되는 양 자랑스러움마저 비친다. 몇 년 전 가장 친한 친구와 한국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는데 어떻게 먹는지 몰라 포크로 재료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 가던 그 친구를 떠올려 보면 세상 정말 많이 변했다. 내 주변에 비빔밥 마니아가 이렇게 많은 세상이 올 줄이야…
한국말은 또 어떤가? 비밀을 얘기할 때는 거의 희귀 언어에 가까웠던 한국어가 적격이었는데… 갈수록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에는 옆사람이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날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여유롭게 볼일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화장실 문도 노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그 중 한 아저씨가 나를 노려보며 “나아쁜 놈! 나아쁜 놈!” 하는 게 아닌가! 빨리 좀 나오라는데 여유를 부린 프랑스놈이 괘씸했나보다.
난 손을 씻고 그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저씨! 프랑스 사람들 다~ 한국말 할 줄 알거든요. 말 조심하세요”라고 저승사자 톤으로 말했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새파랗게 질린 아저씨는 자기가 아니라는 듯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뒷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인 말고 한국말을 할 자가 그 어디 있으랴!’했던 아저씨의 ‘시대착오’였던 것이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 해도 자기 나라의 언어를 소홀히하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어가 없는 한국문화는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사고하고 생활하며 문화를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한류라는 물결을 타고 소주는 소주로, 한복은 한복으로, 한국인은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인 한국인은 긍지를 가지고, 특히 한국인만 쓰고 말하는 ‘우리말’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한국어를 꿈꾸며 그 꿈을 이루어 가야 하지 않을까?[오피니언타임스=스테판 쿠랄레]
스테판 쿠랄레(Stéphane COURALET)
프랑스 몽테뉴대학 한국학과장 부교수
저서 ‘한국어에 있어서의 집단 인칭, 우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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