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안동김씨가 조선 왕조를 농단했던 양과 질로 본다면 철종 재위 14년동안의 장난질은 새발의 피였을지 모른다. 자신이 정조대왕의 동생인 은언군의 손자인지, 왕족인지도 모르고 강화도에서 똥지게 지고 농사짓던 전계군의 셋째 아들 이원범을 데려다 왕좌에 앉히고 안동김문의 수장(首長)인 김문근의 사위로 삼아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온 나라를 당파싸움과 매관매직과 부정부패의 삼천리로 만든 안동김씨가 못할 일은 없었다. 물론 안동김씨만의 잘못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철종 재위 14년간 한성판윤만 110명··· 하루 만에 바뀌기도

즉위 3년만에 친정(親政)을 하게 된 철종은 기근, 가뭄, 화재, 홍수 등에 빈민구제책을 내는 등 민생에 힘을 쓰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국정에 대하여 특별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장인, 처삼촌, 처고모부, 처이모부, 매부, 매제, 사돈의 팔촌 등등 외척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윤허하노라’하면 됐다.

재위 14년간 철종의 명의로 임명된 한성판윤(서울시장)은 총 110명이었다. 평균 재임기간이 한달 보름 정도였던 셈이다. 140여 년 후 YS정권 초기 서울시장에 임명된 K씨가 농지를 전용해 호화주택을 지었다는 논란으로 7일만에 그만 둔 적이 있었지만, 철종시대 서재순에 비하면 그래도 행복한 편이었다. 그는 철종 6년 11월 28일부터 29일까지 ‘단 하루’ 동안 한성판윤 직에 있었던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사람이다.

서씨는 안동김씨 세력의 대부요, 좌장이었던 김좌근의 소실 나합에게 뇌물을 주고 한성판윤에 임명된 것인데, 부임 하루 만에 평소 나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김좌근의 양자인 세도대감 김병기가 자기에게 뇌물 준 사람으로 다시 임명함으로써 생긴 웃지못할 해프닝이었다.

하루 동안 한성판윤을 하고 쫓겨난 서재순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가진 돈 좀 써서 멋진 명정감을 마련한 서씨가 단 하루 만에 한성판윤에서 쫓겨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돈으로 자리를 사기는 했지만 서재순도 포부가 있고, 야망이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업무파악은커녕 전임자를 본지 하루 만에 후임자 얼굴을 보았으니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평균 재임기간이 한달 보름 밖에 안 되었던 역대 한성판윤이었으니 제대로 업무 파악을 한 사람이 있었을 리 없었겠고 민생에 주력한 시장이 있었겠는가. 한성판윤이라는 벼슬이 매관매직의 상품으로 존재했을 뿐 아닌가. 조선 천지에 이런 상품이 어찌 한성판윤 뿐이었겠는가.

정치 상품이 된 국회 비례대표제··· 정략 도구로 활용돼선 안 돼

우리나라 비례대표 제도가 논공행상, 연공서열, 당에 대한 기여도, 계파 보스에 대한 충성도, 지역배분 등에 따라 정치적인 상품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미국 사람에게 우리나라 비례대표 제도의 장점과 한국적 특수성을 아무리 얘기해 줘도 결국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다. 선거란 직접 뽑는다는 말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임명하거나 지명하는 것은 ‘선거’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직능대표니 뭐니 해서 유능한 인물을 지명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매관 매직, 관리 임명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비례대표 제도를 통해 특수계층이나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직능대표를 의회에 진출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특히 가난한 자 중에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자 중에 가장 소외된 장애인의 욕구와 소망을 대변해야 하는 장애인대표의 의회 진출은 무엇보다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영입한 거물인사에게도 한 자리, 금고지기에게도 한 자리, 관뚜껑에 덮을 명정감 마련하려는 졸부에게도 한 자리, 지역적 고려로 한 자리, 식객 노릇하던 가신도 한 자리, 포섭된 정적에게도 한 자리···. 이렇게 따지다 보면 비례대표 공천 받기보다 어려운 일은 없을 듯 보인다.

선거 때만 되면, 무슨 무슨 날이 되면, ‘소외계층 대변하는 정당, 장애인과 함께하는 정당 운운’하면서 정치적인 주판알이나 튕기고 있는 정치권의 두 얼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정치권은 더 이상 장애인을, 소외계층을 정략의 도구나 홍보수단, 상징 조작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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