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영화 ‘레버넌트’는 처절하다. 영화가 그리는 한 남자의 복수가 그렇고, 그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그렇다. 북미의 혹독한 겨울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맨몸으로, 자연 그대로 부딪쳤다. 얼음 강에 뛰어들고, 말의 시체 속에 알몸으로 들어가고,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었다.

그도 어느새 40대 중년이다.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길버트 그레이프’(1993년)로 세계 영화팬들을 놀라게 하면서 단번에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늘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간직하던 이 천재 배우의 얼굴에도 이제 주름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늘 있다. 그리고 출연하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는 배우 역시 디카프리오 혼자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줄곧 빛나는 것은 타고난 재능에만 머물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 도전에 몸을 던지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 놓고 그를 성공작에만, 소위 주목받을 대작에만 출연한 배우라고 할지도 모른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고, ‘타이타닉’이 그랬으니까.

10일 열린 제7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레버넌트’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디카프리오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레버넌트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게티이미지·멀티비츠/포커스뉴스

‘레버넌트’로 남우주연상 6번째 도전

그러나 그는 당대 스타이면서도 ‘길버트 그레이프’로 인연을 맺은 조니 뎁과 더불어 저예산 독립영화, 작가영화에 출연하기를 마다않는 배우다. 상업적 흥행보다는 자신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작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담은 작품이라면 누구와든, 어디든, 어느 시대건 마다하지 않는다. 연기파 대선배인 로버트 드니로와 연기하기를 좋아하며,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배우임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모든 작품에 열정을 다하는 그의 높낮이 없는 연기는 흥행에 실패는 있어도, 작품의 실패는 없다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해마다 그의 영화가 화제가 되고, 그의 연기가 주목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감정적으로 병든 인물을 그려내는 일이야말로 나에게 진정으로 연기할 기회를 준다”는 확실한 색깔의 연기관을 갖고 있는 그는 실력만큼이나 상도 많이 탔다.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에,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만 올해로 3번째다. 유독 오스카상만 그를 외면했다. 지금까지 다섯 번 후보에 올랐지만, 그때마다 동료들의 수상을 지켜보아야 했던 디카프리오가 이번에는 연기생활 23년, 40여편의 영화 출연 동안 ‘오스카 무관’으로 보낸 한을 풀까.

오스카가 그를 외면할 때마다 그는 “상을 받으려고 연기하는 배우가 어디 있느냐”고 말해왔다. 진심일 것이다. 상을 노리고 연기하는 배우는 없다. 상이 배우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도 않는다. 더구나 오스카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며,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상이다. 어쩌면 디카프리오가 이번 ‘레버넌트’를 포함해 이미 세 번이나 탄 골든글러브가 더 공정하고 권위 있는 상일 수도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오스카 트로피는 이번에도 디카프리오를 거부할까? ©플리커

‘오스카상’이 역사로 남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배우라면 다른 어느 상보다 오스카상을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곧 할리우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누구도 엄두내지 못할 ‘레버넌트’ 실화의 주인공 글래스가 되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는 관객들이 보기에도 애처로울 정도로 혹사에 가까운 열연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연기 하는데도 상을 안 줄래”라고 무언의 항의가 들리는 듯했다. 연기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그의 몰입과 열정에 대한 찬사와 놀라움이다.

올해 수상 후보자들인 ‘마션’의 맷 데이먼, ‘대니쉬 걸’의 에디 레드메인, ‘트럼보’의 브라이언 크랜스톤, ‘스티븐 잡스’의 마이클 패스벤더도 모두 자격이 있다. 어쩌면 사실상 미국 국내영화제인 아카데미가 이번에도 그 잘난 국가우월주의와 애국주의, 턱없는 휴머니즘에 사로잡혀 엉뚱한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제발 이번만큼은 연기 말고는 그 어떤 다른 이유로도 자신에게 불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디카프리오를 더 이상 허탈하게 만들지 않기를.

오스카상도 날이 갈수록 그 권위와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할리우드의 힘이 예전 같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상이 상답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상이란 충분히 받을 사람에게 돌아가야 그 가치가 살고, 그 사람도 역사가 된다. 올해 오스카 남우주연상이야말로 한 배우의 명연기에 대한 찬사를 넘어 그와 할리우드의 역사로 남을 소중한 선물이 되기를 기원한다.[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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