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나는 북한 전문가가 아니다. 직업 특성상 남보다 기사를 더 유심히 보고 황당한 정책이 나오면 숨은 꼼수를 따져보지만 단지 그 뿐이다. 북한 관련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미리 금이나 사놓을 걸”하고 생각하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그럼에도 북한 문제에 대해 썰을 푸는 이유는 급랭하는 남북관계를 둘러싼 상식 차원의 문제를 말하고 싶어서다.
일단 팩트는 이렇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다.(1월6일)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장거리 로켓을 또 쐈다.(2월7일) ▲로켓 안에 위성 대신 핵탄두를 넣고 몇몇 기술을 확보하면 북한은 미국까지 날아가는 핵무기를 갖게 된다. ▲분노한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했다. ▲북한은 11일 “개성공단에 있는 모든 남측 인원들을 추방하고 남북 간 연락 채널도 전면 중단한다”고 응수했다.
개성공단 폐쇄로 정부가 얻은 것들
개성공단 폐쇄에 따른 손익계산서를 따져보자. 우선 정부는 속이 시원할 것이다. 그간 햇볕정책이다 뭐다 쌀도 퍼주고 분유도 줬는데 항상 제멋대로 행동하던 북한에 한방 제대로 날렸다. 북한은 연간 1억 달러(약 1200억원)의 수입이 줄 것이고, 이 돈이 무기 개발에 쓰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정부 여권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고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면 숨어있던 보수층이 결집한다. 북풍이 계속되면 두 달 뒤 열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뜩이나 지리멸렬한 야당을 누르고 여당이 득세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180석을 확보할 경우 정부 여당을 괴롭혀온 국회선진화법 무력화도 가능하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로선 레임덕을 벗어날 힘을 얻게 된다.
외교적으로도 여러 포석이 숨어 있는 듯하다. 북한 문제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중국과 미국에 “한반도 상황이 심각한데 이래도 가만있을래?”라고 압박하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안 마련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의명분이 우리에게 있는 이상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성급한 조치’ 우려 나오는 이유
반면 우리가 잃는 것도 만만찮다. 일단 북한과의 완충지대를 잃었다. 남북 교류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은 2004년 첫 가동 이후 12년 동안 부침을 겪었으나 꾸준히 유지돼왔다. 북한과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최후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북한의 돈줄을 옥죈다 해도 상식적으로 북한이 ‘손안에 쥔 핵’(완성 단계인)을 내려놓진 않을 것이다. 북한은 주변국의 압박과 회유에도 꾸준히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국제 고립이 더 심화될수록 비장의 카드를 더욱 꽉 움켜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014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322억달러(33조9490억원)에 달한다. 개성공단에서 1억 달러 못 벌어도 우리 생각만큼 큰 타격을 받진 않는다.
국제사회의 호응도 미지수다. 미국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전제로 우리 손을 들어줄지 모르나 중국은 어림없다. 북한 전체 무역 의존도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딴청을 피우면 대북제재 효과는 급감한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말 안 듣는 동생’이지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우군이다. 한미일 삼각공조가 강화하는 상황에서 버릴 수 없는 카드다.
자다가 날벼락 맞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북한은 11일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맞서 개성공단 자산 일체를 동결하고 우리측 인원 전원을 추방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때에 비춰 충분히 예상된 일임에도 정부는 입주 기업들에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동네 슈퍼마켓이 폐업해도 하루 만에 정리는 불가능하다. “단 며칠 전에라도 미리 알려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하는 기업 관계자의 인터뷰는 눈물겹다.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정부 조치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개성공단은 폐쇄됐고 북한이 남북 연락 채널 전면 중단까지 내세워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남북관계는 판문점 직통전화마저 끊겨 김영삼 정부 때보다 더 경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폐쇄로 우리가 얻은 건 무엇인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정부 조치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리의 뼈를 깎는 고뇌와 결단’을 보여준 게 전부다. 북한의 핵도발 야욕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확고한 의지는 알겠지만 남북대화의 마지막 통로인 개성공단 카드를 내주고 현실적으로 손에 쥔 게 없다. 정부 대응은 너무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만일 개성공단 중단이 북의 도발을 억제할 만한 위력을 가졌거나, 북한의 무기 개발에 큰 타격을 준다거나, 국제사회의 제재를 이끌어낼 확실한 촉매가 됐다면 정부 결정을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여전히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공조를 촉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등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주도하는 정부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며 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강력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주변국들이 제재에 동참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가 우리 뜻대로 움직일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외교관계는 철저히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너무 성급했다. 북한의 핵개발 저지라는 목표는 임기응변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치밀한 계산과 전략 아래 중국 등 주변국과 물밑 접촉을 통해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대화는 포기하고 강경 대응에만 올인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불안한 이유다.[오피니언타임스=박형재]
박형재
오피니언타임스 기자
전 세계일보 로컬세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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