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프리미엄 코리아]

오늘날 돈은 한편으로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소외와 탐욕의 상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돈의 용도는 점점 다양해지고 위력은 더 커져왔다. 지금은 금전만능주의가 절정에 도달한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 중요해질수록 이에 반비례해 인간 소외가 더욱 심해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것은 대표적인 가치전도 현상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이 강조했던 대극 반전에 해당한다. 삶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돈이라는 삶의 수단에 자리를 내주고 객체의 위치로 격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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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주인인 시대, 부와 권력 등 상징··· 인간은 삶의 객체로 격하

우리는 돈이란 원래 주변에 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부터 누구나 자연스럽게 돈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살 수 없으며, 돈이 없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류 역사에서 돈이 지금처럼 보편적인 거래 수단이자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몇 백 년 전 봉건시대만 해도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며 널리 사용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물물교환이나 선물 형식의 증여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였던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년)는 ‘증여론’이란 책에서 북아메리카 인디언, 폴리네시아와 멜라네시아 부족들의 삶을 면밀히 관찰한 후 이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을 통해 사회를 유지해왔음을 밝혔다. ‘포틀레치’와 ‘쿨라’는 이런 풍습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등가교환이라는 돈의 논리에 반하는 행위를 상징한다.

그런데 돈이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한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과거에는 돈을 주고 구입하지 않았던 재화나 서비스도 이제는 돈을 주어야 구입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웃끼리 서로 애를 돌봐준다든가 품앗이라 하여 서로 노동력을 공유하던 풍습은 사라지고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에서 시장지상주의로 인해 도덕적 가치가 무시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모두 한번쯤 진지하게 돈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돈이 없으면 제대로 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플리커

돈의 구매력은 배타적 권리··· ‘개인’과 함께 등장, 사유와 분리의 상징

우리가 보통 돈이라고 하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화폐(money) 또는 통화(currency)라고 부른다. 일부 전문가들은 금과 같은 귀금속에 의해 가치를 보장받는 경우에는 화폐라 하고, 그렇지 않고 정부가 보증하는 경우에는 통화라 하여 돈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구분하든 돈이 사회적 합의(social agreement)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므로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돈은 사람들이 미래에도 가치가 있을 것으로 믿는 한 계속 사용될 것이다. 반면 만일 머지않은 미래에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 확실하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돈을 보유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므로 돈은 가치 없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같이 돈이란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인간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그러면 돈, 즉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화폐는 한마디로 ‘일반적인 구매력의 원천’이라 정의할 수 있다. 돈은 거래 대상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증서다. 정확히 말하면 중앙은행이나 일반은행이 발행한 부채증서다. 이런 화폐의 기능으로는 보통 회계의 단위, 교환의 매개 및 가치 저장을 거론한다. 이 가운데 앞의 둘은 효율적인 거래에 불가결한 기능이며, 가치 저장 기능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기능으로서 금융의 진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 금융자본의 지배는 돈의 가치 저장 기능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돈도 인류의 문명과 함께 진화해왔다. 개인적으로는 진화라는 용어가 여러 분야에서 남용되고 있음을 우려하는 입장이기에 여기서 ‘진화’를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진화란 생명체가 자연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면 돈의 진화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돈 자체가 의식을 가진 생명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돈의 진화란 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의식의 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인류 최초의 신용거래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이루어졌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화폐는 기원 전 7세기경 그리스에서 사용되었던 주화(鑄貨)인 드라크마(Drachma)였다는데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신용거래는 곧 화폐의 유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제현상이므로 사실 인류는 오래전부터 화폐의 개념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개인’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최초의 화폐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전통은 그대로 로마로 이어졌으며 그 후에는 중세를 거쳐 서구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돈은 처음부터 사유(私有)의 대상이자 분리(分離)의 상징이었다. 이것이 돈의 타고난 운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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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진화, 남미 금·은 유럽 반입으로 인플레이션 후 금융산업 발전

그런데 돈의 진화의 역사가 그리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5세기 서로마가 멸망한 후 중세 봉건시대를 거치면서 장원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경제에서는 돈의 용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기간 화폐의 침체기가 지속되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돈의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으면서 경제활동을 했다는 의미다. 이런 침체 상태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도시가 발달하고 수공업이 발전하면서 중세 말인 14세기경 다시 화폐가 부활하였다. 돈이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돈의 역사에서 특별히 주목할 사건은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이 남미에서 대량의 금과 은을 유럽으로 반입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1545년부터 1560년 사이 스페인은 매년 남미로부터 은 24만6000톤과 금 5500톤을 들여왔다. 실로 엄청난 약탈이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유럽에서는 전대미문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며 결과적으로 금융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통해 유럽인들은 돈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몸으로 체험했으며 돈의 가치저장 기능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에서 은행업을 필두로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등을 포괄해 금융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금융자본은 곧 돈의 진화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우리가 돈에 대해 생각할 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돈이란 다양한 대극적인 속성들이 결집되어 있는 실체라는 사실이다. 돈은 분리의 상징이자 통합의 촉매가 될 수도 있다. 돈은 이기심의 상징이자 이타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돈은 지극히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특성을 가질 수 있다. 돈은 탐욕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자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대극적인 속성을 들자면 끝도 없다. 이 말은 돈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소유하면 사용하는가가 중요하지, 돈 자체는 단지 수단이요 구매력의 원천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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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많지만 돈 없는 경제 활동은 불가능, 통합의 촉매 역할 찾아야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돈의 부작용에 대해 말해왔다. 그 가운데 지금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다음의 두 구절을 통해 돈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보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저서 『유토피아』에서 화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폐가 유일한 가치 기준인 곳에서는 그저 사치품이나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불필요한 거래들이 수없이 행해져야 한다.···화폐와 화폐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없앤다면 얼마나 많은 사회 문제들이 제거될 것인가! 그리고 화폐가 사라진 순간 여러분은 공포, 긴장, 불안, 과로, 불면의 밤에도 작별을 고할 수 있다.”(애니트라 넬슨·프란스 티머만의 『화폐 없는 세계는 가능하다』(2013년)에서 인용)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화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폐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나라한 이해관계와 냉혹하고 무정한 금전 거래를 이어주는 것 외에 어떤 기능도 수행하지 않는다. 화폐는 사람의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만들었고, 양심 없는 자유무역이 무수한 특허와 스스로 쟁취한 자유를 대체하게 했다. 화폐는 사람들이 존경하는 직업의 신성한 후광을 지워버렸고 의사, 변호사, 교수, 시인, 학자를 돈에 고용된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화폐는 온정이 넘치는 가정의 면사포를 찢고 가족 관계마저 금전 관계로 전환시켰다.”(중국 CCTV 다큐멘터리 제작팀 『화폐경제 1』(2014년)에서 인용)

필자는 단순히 돈의 부작용을 강조하기 위해 이들의 글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돈이 없는 경제, 즉 물물교환 중심의 경제를 상상할 수 없다. 돈은 이미 모든 경제활동에 깊숙이 침투해 있어 실물경제와 화폐경제를 분리한다는 것 자체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차원, 국가적 차원 나아가 글로벌 차원에서 돈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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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악화 막는 이타심과 자비의 실천 수단 깨달아야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돈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철학자 앨런 와츠의 표현대로 자신을 ‘살가죽에 둘러싸인 에고’로 파악하는 사람에게 돈은 사유(私有)의 상징이자 분리의식을 강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돈의 마력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오직 돈만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 생각하는 것이다. 자아의식의 한계를 넘어선 뭔가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결코 돈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국가적 차원에서는 돈의 양, 즉 통화량을 잘 조절해 시중의 유동성을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함으로써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을 예방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실물경제를 지원하고 경기순환을 조절하는 정책 수단으로서 통화량 조절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려면 돈에 대한 개인 심리와 군중심리를 동시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나라의 통화당국은 거시경제 현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만이 아니라 군중심리에도 정통해 이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는 불평등의 악화에 대한 궁극적 해결방안으로 (특히 부자들의) 돈에 대한 사고에 혁신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도 지적했듯이 인간은 ‘이기적인 면과 이타적인 면’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존재다. 비록 경제활동 과정에서는 이기적인 면이 강조되어왔지만 동감(sympathy)에 바탕을 둔 이타적인 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일부다.

누구라도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자신이 번 돈이 오직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궁극적 인클로저(enclosure)의 상징이자 전적인 사유물로 간주되던 돈이 이제는 어려운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자비를 실천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부호인 미국의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이 같이 깨달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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