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학창 시절, 시험이 다가오면 교과서, 공책, 문구류가 널려 있는 책상 주변이 신경 쓰여 공부에 앞서 환경 미화부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도 시험 마지막 날 학교서 단체 관람할 영화의 원작 소설 ‘제인 에어’, 제목부터 매력적인 ’생의 한가운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책들을 뒤적이고)

큰일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도 함께 정리된다. ©픽사베이

새 출발 준비하는 정리정돈, 생활의 절제 되새기게 해

시험 공부에 앞서 주변을 정리하는, 무언가 큰 일에 앞선 워밍업의 절차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늘 닦고 치우는 깔끔한 성격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중대사를 앞 두고 딴 짓에 마음과 시간을 쓰느라 정작 주력해야 할 일의 출발이 늦춰지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오피니언타임스’의 첫 원고 마감을 앞둔 지난 일요일, 패딩 파커와 머플러부터 등산복 핸드백까지 겨우내 애용했던 물건들이 수북한, 현관 입구의 방을 치우느라 정작 원고 집필 시간은 한참 뒤로 밀렸다.

물론 정리 정돈이 뒤로 제쳐져야 마땅한, 무의미한 작업은 아니다. 우리 생활은 각양각색 물건이 제 자리 있을 때 보기 좋고 쾌적할 뿐더러 효율적 경제적 생활이 가능하다. 두툼한 겨울용 기모 바지를 3월 초 봄 옷 더미에서 발견한다든지, 수영장 갈 때 수영용품 봉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물건들은 제 구실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당장 필요하다면, 어딘지 있는 게 확실하더라도 새로 장만해야 하니, 물건이 쌓이는 악순환은 되풀이 된다.

옷장에 옷을 보관하듯, 신발은 신발장에, 책은 책장에 넣는 것이 정리정돈이련만 물건 치우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수납장들은 대부분 포화 상태다. 옷, 신발, 그릇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운동기구나 의자를 옷걸이 삼은 옷이며, 식탁 위의 화장품 등으로 물건들이 원위치를 벗어나 모습을 드러낸다. 책장을 새로 장만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책들이 방바닥, 탁자 위, TV 옆에 수북히 쌓인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매년 연말 마음 먹고 가지런하게 정리한 책상 서랍, 책꽂이는 새 봄을 맞기 전 서류 파일, 우편물, 컴퓨터 관련용품으로 어수선해진다. 치우기는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치밀한 작업이지만, ‘너저분해지기’ ’어지럽히기’는 언제 어디서든 순식간에 실천 가능한 쉬운 일이다.

정리정돈 요령을 담은 책들은 하나같이 ‘덜 소유’를 강조하지만, ‘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사진처럼 일상용품부터 소중히.©픽사베이

다양한 정리정돈 요령 책들, 베스트셀러에도 올라··· ‘제대로 버리기’가 요체

정리 정돈은 너나없이 어려운 과제 같다. 지난 주말 동네 대형서점에, 물건별 정리법을 제안한 일본인의 책이 ‘가정 생활 요리’ 부문 톱10에 올라 있었다. 서점 직원에게 물어보니 정리 관련 책은 ‘경제 경영’ 코너에 모여 있다고 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소비 행태를 연구하고 정리의 노하우를 제시하는 전문가의 팁을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시판 중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비롯해 ‘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 , ‘정리 습관의 힘’등의 책은 구체적으로 정리 정돈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서랍 속 속옷의 수납 요령부터 아깝다고 불들고 있기보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물건은 모두 쓰레기'라며 버리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의식 개조까지. 한편 ‘잡동사니의 역습’, ‘100 개 만으로 살아 보기’류 의 책은 과소비 시대에 ‘덜 소유’의 심플 라이프를, 갖고 있는 물품의 덜어 내기를 강조한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정리 정돈의 비결로 ‘물건을 제자리에’의 단계를 너머 ‘제대로 버리기’를 일깨운다.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쾌적하고 즐거운 환경을 유지하려면 망설이지 말고 당장 버리기가 정리의 비결이란다. 근검 절약이 미덕이던 시대에 성장한 구세대로선 선뜻 받아 들이기 어려운 조언이다. 실생활에선 ‘언젠가 쓸 것 같아서’, ‘추억이 깃들어서’, ‘아직 새 것인데’ 등등의 이유로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날'을 위해 옷, 책이며 기념품을 모셔 둔다. 그뿐인가. 식탁에 오를 식품부터 ‘멋진 새 것’, ‘마지막 떨이 세일’ 류의 마케팅에 혹해 쇼핑하다 보니, 주거 공간이 잡동사니 창고화하고, 물건 더미 속에서 마음과 생활도 번잡해 진다.

새봄 대청소의 시즌, 우선 물건의 제 위치를 바로 잡아 그 쓸모와 미감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버릴 물건은 과감히 처분하기’, ‘쇼핑은 보다 신중히’의 지침 아래, '하나를 처분해야 하나를 채운다'는 각오로 물건 갯수를 늘리지 않으며 일상용품을 소중히 대하는 마음가짐을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퇴직 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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