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언젠가 페북에서 인상적인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추억이란 글이었는데 누렇게 바랜 사진에는 쪽머리에 한복 차림의 50대 여인이 차분하게 정면을 보고 있었다. 글을 올린 여자는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고 기억했다. “더러운 여관에 가지마라. 집으로 와라. 집을 비워줄 테니.”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다고 했다. “화장품 바르지 마라. 책을 읽어라, 그러면 내면의 아름다운 빛이 너를 감쌀 것이다.”

며칠 전 친구와 술을 먹다가 “진품 위에 쓰레기”라는 말이 마치 방언처럼 터져 나왔다. 이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오피니언타임스 독자라면 금세 눈치 챌 것이지만 부연설명을 하겠다. 쓰레기는 잉여, 버블이다. 엘리 프레이저가 쓴 ‘생각조종자들’이란 책이 있는데 책의 원제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다. 우리 존재를 가리는 필터가 거품처럼 넘친다는 뜻의 제목이다.

여자의 화장처럼 본질을 가리는 필터가 거품처럼 넘쳐난다. ©픽사베이

우리를 혼동시키는 가리개

책에는 선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자 겸 컴퓨터 과학자인 빌 조이의 말이 나온다. 빌 조이는 2000년에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깊은 우려를 담은 에세이 ‘미래에 왜 우리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를 와이어드 지에 발표하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제3세계의 정치 불안, 인구문제, 중산층의 붕괴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지만 거짓 이슈, 오락, 게임 등이 우리를 혼동시키는 가리개가 된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나온 거짓 이슈가 바로 진품 위에 쓰레기 중 하나일 것이다.

SNS에 매일 업데이트 되는 것들 중 80, 90%의 내용들은 우리로 하여금 본질적인 것들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만든다. 정보를 처리하는 두뇌 용량에는 한계가 있으니 사람들은 피로하여 다른 데 관심을 가질 수 없다. 생각조종자들 입장에서 보면 허수아비를 세워 참새들의 관심을 돌리게 하는 수법인데 문제는 이것이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도시에 사는 대중이라면 하루 2000개 정도 노출되는 광고들부터 근거도 없는 도시 괴담들, 만들어진 스토리텔링, 마케팅 차원에서 행해지는 검색 순위 1위, 베스트셀러나 포춘이 선정한 세계의 경영사상가 50인 따위의 순위 마케팅… 낚시 헤드라인 등 진품을 가리는 쓰레기가 꽤나 많다. 앞에 페북 글 어머니 말씀 중에 내면의 아름다운 빛을 가리는 화장품도 과도한 만큼(한국 여성들이 노랑머리 여성들보다 화장품을 2배 더 쓴다는 것은 알려진 통계)은 쓰레기고 더러운 여관도 필요를 넘으면 쓰레기다.

거짓 이슈, 오락, 게임 등은 우리를 혼동시켜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게 만든다. ©픽사베이

폰 인 버블

요즘 거리를 다니고 지하철을 타고 커피숍에 있다 보면 한국에 새로운 종족이 탄생했음을 실감한다. 바로 폰인(Phone 人)이다. 이는 스마트폰을 필요에 따라 쓰는 도구적 인간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일체형으로 된 신종 존재를 말한다. 독자들은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때나 버스에서 내리는 때에도 얼굴이 스마트폰에 붙어있는 이 종족을 쉽게 보면서 걱정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캠퍼스에서 여대생이 스마트폰을 얼굴에 붙이고 가다가 후진하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기사도 있었다.

이 지경이고 보니 아마도 10년 쯤 뒤에 보면 이 시대에 대한 특별한 묘사가 다음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얼굴이 없어지고 대신 스마트폰이 어깨 위에 붙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스마트폰은 진품인가 쓰레기인가. 거기다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미래에 필요 없는 존재로 될 것’이라는 세계적 우려에 ‘스마트 강국, 한국은 특히 더’까지 더해진다면? 페북의 그 현명한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말씀 중 화장품 자리에 스마트폰이 들어갈 것 같다.

나도 애용하는 만큼 스마트폰이라는 진품의 유용성에 대해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도구가 쓰레기로 트랜스포밍되어 사람을 덮어버린다면 이건 문제다.

미국의 사진작가 에릭 피커스길(Eric Pickersgill)이 온라인에 공개한 사진. 사람들의 일상에서 스마트폰만 지웠더니 적막감과 소통 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에릭 피커스길 홈페이지

재벌의 버블

국내 최대 광고회사로 삼성그룹계열인 제일기획을 해외에 매각할 것이라는 뉴스가 이슈다. 나도 그 회사를 다녔었는데 한 가지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세계의 글로벌 기업 중에는 인하우스 에이젠시(In-House Agency)가 없는 것 같은데 왜 한국 재벌기업엔 있을까? 인하우스 광고회사의 장단점은 이미 많이 분석되었으니 특별히 그를 거론할 생각은 없다. 내 관심과 우려는 재벌 기업들의 유용성 상실 여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나는 재벌해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었다. 자본규모가 작은 한국에서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믿었고 일부 재벌의 리더십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150° 정도 바뀌었다.

발전 모델의 프레임이 바뀌었고 그간 한국의 성장에 기여했던 진품 재벌의 역할은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제 재벌은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다운사이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제일기획 매각이 유용성 회복의 신호탄이기를 바란다. 거인이 이상해지면 괴물이 되는 법이다. 지금 재벌은 거인인가 괴물인가.

혁신의 피는 식고 고용효과도 줄고 낙숫물효과도 적어졌다. 오히려 골목상권 황폐화, 시장의 왜곡에 의한 자원 낭비, 전쟁 같은 경쟁 문화, 중소 중견기업의 성장 억압, 기업 내 비인격적 문화 증가와 같은 부(負)의 엔트로피가 더 커졌다. 그 뿐인가. 일부 2~3세들의 막말과 사치, 심지어 국어 능력 부족과 이중결혼 행위 따위는 리더십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치, 국민적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지금 20대 흙수저들은 구글의 미래 비전과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의 과격한 도전, 30대 해커 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의 52조원짜리 울트라 통 큰 기부에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그들에게 누가 헬조선, 금수저-흙수저 같은 쓰레기 밭의 쓰레기 꽃들을 피우게 했는가. 그러니 경제 위기론이 먹힐 리 없고 창조 에너지가 모일 리 없다.

진품 위에 큰 쓰레기인 폰인 버블과 재벌 버블에 페북의 그분 어머니는 무슨 소리를 하실까?[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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