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 이야기]

요즘 언론에 비치는 여의도 정가는 어지럽다. 몇 년마다 되풀이되는 똑같은 현상에 기시감을 느끼면서 새삼 중국인들이 흔히 쓰는 ‘하이부즈따오’라는 말이 생각난다.

2003년 초, 산둥성(山東省)의 칭다오 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에게도, 본사의 분식회계로 야기된 ‘SK 글로벌 사태’의 파장은 예외 없이 몰아쳐 왔다. 검찰의 발표와 이후의 진전 상황에 따라 회사와 직원들의 명운이 걸려있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매 시간마다 피 말리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현장에만 있었던 우리로서는,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된 이 사건에 경악했고, 이로 인해 조직이 없어지고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으며 좌절했다.

조선 말기 화가 지운영이 그린 ‘준마’. 1919년 작.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아직은 모른다’는 뜻의 하이부즈따오, 인생지사는 새옹지마

이 때 중국 친구가 나에게 던진 한 마디가 ‘하이부즈따오(還不知道;환불지도)’이다. ‘아직은 모른다’라는 뜻의 이 하이부즈따오는 중국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고, 중국 사람들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는 말임을 나는 중국에서 살면서 자주 느꼈다. 지금 눈 앞에 견디기 힘든 시련이 왔다고 하더라도, 뜻밖의 행운이 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일은 아직 서둘러 예단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노장(老莊)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음 직한 이 말은 어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매사에 진중하고 겸손해야 하며 쉽게 좌절할 필요는 더욱 없다는 가르침이다. 나는 한 마디의 말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힘을 주고 허물어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를 어려웠던 당시 ‘아직은 모른다’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눈앞의 결과가 그 사람의 행, 불행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으로 우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를 알고 있다.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은 빈객과 방술가(方術家) 수천을 모아서 형이상학적인 철학에서부터 천문, 지리 등 자연과학과 일반 정치학에서부터 병학(兵學)까지 아우른, 그리고 개인의 처세훈(處世訓)까지 열기한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은 이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인데, 이 말은 원(元)나라의 승려 희회기(熙晦機)가 그의 시(詩)에서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설파한 후 널리 퍼지게 된다.

중국 북방의 오랑캐와 인접한 변경 지역에 살던, 점술에 능한 노옹(老翁)과 말(馬)과의 관계는 인생에 있어서의 길흉화복은 워낙 변화무쌍하여 현재를 보고 함부로 앞날을 예측하여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처음 말이 도망갔을 때와 그 말이 다른 말을 데리고 왔을 때, 그 말을 타다가 아들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 그리고 다리가 부러져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않은 일련의 상황들에서 이 노옹(老翁)은 절대로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한 때의 이(利)가 장래의 해(害)가 되고, 지금의 화(禍)가 복이 되기도 함을 이 노옹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픽사베이

정치인의 화(禍)·복(福)도 그 끝은 몰라… 좌절할 필요 없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나는 이 ‘새옹지마’의 오묘한 진리에 감탄하곤 한다. 당장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듯 좌절하면서 잠을 설치던 일도, 지나보면 차라리 그것이 나에게 더 큰 기회와 성장의 계기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이부즈따오(還不知道), 아직은 모른다는 이 한 마디가 어려웠던 시절을 견뎌내게 한 동력이 되었으며 이 말은 지금도 내가 처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노자는 2500년의 시공을 넘어 다음과 같이 위로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찾아온 어려움(禍)이여! 네 속에 또 다른 행운(福)을 품고 있구나!(禍兮! 福之所倚!화혜!복지소의!) 지금의 행복(福)이여! 그 속에 화(禍)가 엎드려 있구나!(福兮!禍之所伏!복혜!화지소복!) 삶의 끝을 누가 알겠는가?(孰知其極:숙지기극?) 거기에는 정답이 없다.(其無正:기무정)’

혹시 요즘 여의도에서, 당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거나 주변사람들로부터 배신감을 느껴 좌절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중국 사람들의 ‘하이부즈따오’라는 말을 권한다. 모든 상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앞으로의 결과는 ‘아직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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