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에서 쓰는 편지]

캠핑카를 타고 북유럽으로 오로라를 찾아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날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묵을 계획이었는데, 조금 무리해서 ‘스웨덴의 관문’ 말뫼까지 달렸습니다. 느닷없는 일정 변경은 제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을 돌본다는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하루쯤 머물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일러 복지, 복지 하는지 잠시라도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 머문다고 복지의 실체가 와 닿을 리는 없겠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뭔가 느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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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지인에게 들은 ‘부러운’ 육아, 교육, 노인 복지

게다가 말뫼에는 제가 아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7년 정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마침 그가 SNS에 올린 제 여행코스를 보고 말뫼에 꼭 다녀가라고 초청했습니다. 제게는 거절하기 어려운 기회였습니다.

그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전부 옮길 생각은 없습니다. 대개는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복지에는 문외한이어서 전문적으로 분석할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인상 깊었던 몇 가지만 적겠습니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육아문제였습니다. 우리의 출산 기피 풍조가 복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스웨덴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 역시 ‘일’이라는 전제로 지원을 한다고 합니다. 출산을 하면 180일의 육아휴직이 의무화돼 있습니다. 480일까지 쉴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달에 70만 원 정도의 육아수당이 지급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교육 역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스웨덴의 교육제도는 평생학습을 기본으로 합니다. 취학 전 교육부터 무상으로 시행하는 것은 물론 16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자녀수당을 지급하고, 아이들이 16세에 달하면 학비보조금을 직접 지급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도 석사까지는 학비가 면제고 박사과정은 월급을 받아가며 공부합니다.

스웨덴 역시 노령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노인정책이 복지의 화두가 됐습니다. 노인을 돌보기 위한 도우미, 양로시설 등에 많은 예산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보통 40년 정도 일을 하는데, 은퇴 후에는 노후를 보내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연금이 지급됩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일을 하고 싶은 노인에게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주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급식 문제로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노인 기초연금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나라에 사는 저는, 대화 내내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물론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무조건 찬양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복지만 누리는 집단이 생기는 등 ‘복지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또 1990년대 초의 심각한 경제 위기로 복지 수준이 많이 축소된 것도 사실이고요. 더구나 국방예산 등에 막대한 지출을 하는 우리 형편으로 복지 선진국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픽사베이

IMF가 발표한 한국의 소득불평등 가속화… 국민이 자각해야 살아남아

정작 제가 부러워한 것은 복지 자체가 아니라 부의 분배였습니다. 복지의 근원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복지를 늘리기 위해 부의 재분배가 선결돼야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대표적인 수단이 과세정책이지요. 복지 선진국들과 우리는 거기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소득에 부과하는 최고세율이 스웨덴은 56.9%이고 덴마크 55.6%, 핀란드 49.1%라고 합니다. 일본도 50%가 넘지만 우리나라는 38%에 그치고 있습니다. 마침 귀국하자마자 이 수치가 가져온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유럽에서 돌아와 먼저 눈에 들어온 뉴스는 IMF가 발표한 ‘아시아 불평등 분석’ 보고서였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상위 10% 고소득층이 국민 전체 소득의 45%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100명 중 10명이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가는 것이지요. 1995년 29%였던 고소득층의 소득 비중이 2013년 45%로 16%포인트나 상승한 것입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평균 1∼2%포인트 상승한 것을 보면 소득의 편중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의 불평등은 세금 등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그대로 부의 편중이 됩니다. 소위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하는 것이지요.

전문가가 아닌 제가 소득의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알면서도 실천되지 않는 문제, 즉 고소득층에 중과세하고 저소득층은 감세하는 누진적 조세정책이 시급하다는 것 정도나 예로 들 뿐이지요. 소득 열위 계층인 비정규직이나 파견·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임금 인상 역시 시급한 과제겠지요.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데 있습니다. 결국 부의 편중은 갈수록 고착화되고, 복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자체가 공허할 지경이 됐습니다. 불만이 ‘민란(民亂)’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금수저·흙수저’론을 보면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할 일도 아닙니다. 소득 불평등이 극에 달하면 계층 간 갈등과 사회 불안이 고조되는 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쾌도난마식으로 일거에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절실하고 시급한 문제임을 인식하는 게 먼저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해결방안을 찾아내고 과감하게 메스를 대야겠지요. 선거 때만 되면 입술에 설탕을 바르고 나타났다가 선거가 끝나면 밀물처럼 빠져나가는 정치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소득 불평등국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의 자각도 필수입니다. 요구할 건 요구하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외칠 줄 알아야합니다. 그보다 먼저 두 눈 부릅뜨고 올바른 투표를 해야 하겠지요. 최선이 없으면 차선, 그것도 아니면 차악이라도 뽑아야 하니까요.[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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