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 앤 마케팅]

투표가 코앞이다. 사분오열된 정치인들과 득표를 위한 잔머리들, 용서해달라며 무릎 꿇는 대구 진박들…. 이게 과연 정치를 맡길 후보들인가 회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선도 아니고 차선도 아니고, 차차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들러리 선거가 지속되는데, ‘지역을 위해 힘 있는 당 사람을 뽑아야 한다’, ‘불의한 그들을 견제하게 해 달라’, ‘유권자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민주시민이 아니다’라는 협박적 설득에 번번이 당해 온 것이 한국 선거의 실상이다.

정책을 보면 여당과 야당 구분도 없어진 지 꽤 된 터에다 원숭이가 후보로 나와도 여당 자(字)만 붙이면 찍어줄 부동의 35%가 건재한 선거판이다. 투표율을 낮춰 여당 지지율을 높이려는 작전인지 몇몇 대기업은 투표 전 집단 연차를 쓰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당은 친박 비박하더니 급기야 진박 운운하는 천박한 유세를 하고 있고, 야당은 계파와 더불어 쪼개져 하나는 혁신적으로 튀어나가고 하나는 선거 용병을 데려다가 연일 화제성 행태와 발언을 일삼는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 혐오감이 꼭지라 하니 “정치적 무관심을 키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속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견공한테는 미안한데 이런 개판이 없다.

4월 13일 투표가 끝나면 언론은 “국민은 현명했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 들여···” 운운하며 끝을 장식하고는 이어 짝짓기 쇼를 잠시 하고 ‘이젠 대선으로’ 하면서 다시 4년간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갈 것이다. 트럼프가 인기를 끄는 미국이나 우익이 판치는 일본 선거판도 한심해 보이기는 한데, 한국 선거판도 대를 잇는 정치 호족과 1% 집단들의 합법적 나눠먹기 경매장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 차라리 국회를 둘로 만들어 경쟁을 시켜야 할까.

변시지 화백의 ‘이어도’. 죽어야만 갈 수 있는 신화의 섬 이어도에서 배만 돌아 온 모습을 담아냈다.

바람의 화가

너도 나도 선거 이야기할 테고 이따위 선거 얘기만 하면 하품 나오니 잠깐 한 화가 이야기를 통해 선거로 돌아가보자. 폭풍의 화가로 불리는 변시지 화가 이야기다. 1주 전에 서귀포 기당 미술관에 들러 변시지 화가의 그림을 둘러보았다. 서홍동 생전 화실도 둘러보고 일대기 책도 읽었다. 전에는 잠깐 화보로만 조우했던 화가다. 가슴을 때리는 외로움과 신화적 모티프, 풍토적 정서가 남달랐는데 이번에 두루 보니 공감하는 바가 더 컸다.

1926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가서 광풍회(光風會, 일본의 대표적인 인상파 사실주의 단체) 회원이 되었다가 한국인 최초로 일전에 당선한 입지전적인 변시지다. 일본에서는 당시 화단 흐름을 따라서 주로 인상파 계열 인물화를 그렸다. 서울대 미대의 초대를 받고 귀국한 후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두어 궁궐을 모티프로 삼아 극사실주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당시 학계와 화단에 실망하여 결국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로 돌아가서 그만의 그림을 완성한다. 자연지리학적 풍토(Terroir)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인간 본연의 풍토를 찾은 그는 늘어진 태양, 황토 빛 하늘, 세상을 갈퀴질하는 폭풍, 절벽, 소나무, 외발 까마귀, 낡은 배와 비루먹은 조랑말 그리고 구부정한 한 사나이 등을 주 소재로 30년을 그렸다.

처음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유화에 간명한 수묵터치를 보고 세한도를 떠올린다. 그러다가 강렬한 황토 빛과 바람의 휘갈김을 보면서 고호를 떠올리고 원시적인 느낌에서는 타히티로 간 고갱도 떠올린다. 해변에 낡은 배가 한 척 있고 그를 바라보는 외족오를 그린 ‘이어도’ 등을 본 사람들은 그를 제주도 신화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계속 보면 제주도를 넘어 세계 속 인간으로 창을 꽂아 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안, 외로움, 기다림···. 인간이 강폭(强暴)한 세계 앞에 마주한 정서가 이런 것이리라. 화가는 쉽게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바위를 덮치는 파도와 폭풍 앞에서 까마귀들이 날지도 주저앉지도 못하는 ‘생존’을 보면 희망의 답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아버지가 개명해 준 화가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시지(時志)다. 시대의 본 마음 또는 시대에 뜻을 둔다는 뜻일까. 실제로 그의 일생은 가혹한 시대를 탔고 그의 그림은 시대의 바람에 휘둘리는 인간을 겨냥한다. 세상을 좀 산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심쿵 충격을 받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변 화백의 ‘생존’. 검은 하늘과 거친 광풍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까마귀들의 모습은 마치 깜깜한 선거 앞에 선 한국 유권자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람 앞의 선거

나는 특히 작품 ‘생존’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작품 ‘생존’에서 하늘은 천지현황 깜깜하고, 작은 바위를 덮치는 광포한 파도와 바람 그리고 그 앞에서 날지도 숨지도 못한 채 이리 날고 저리 뛸 수밖에 없는 까마귀들이 그려져 있다. 마치 깜깜한 선거 앞에 선 한국의 유권자 모습 같기도 하고 강폭한 시대의 바람을 뚫으려는 몇 의인이 처한 상황 같기도 하다. 제목처럼 민주주의 선거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정치판만 보면 바람이 걷힌 후 다시 태양이 떠도 그것은 누런 황토 빛 하늘에 늘어진 태양일 것 같고 그림 ‘이어도’처럼 배는 돌아왔으나 사공은 없는 그런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연 나뿐일까. 지인들 말을 들어보니 온갖 의견들이 모이는 종합소식통인 택시 기사들도 웬일인지 정치 평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승객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정치? 관심 없어요. 나 먹고 살기도 바빠요”라고 한다는데, 정치인들만 대대로 먹고 살려고 정치한다는 이런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지금 정치인(政治人)은 정치인(政痴人)들은 아닌 건지.

국민들이 생존을 우려하는 때임에도 정치꾼들은 점점 세를 불려가는 상황에서 혹시 다른 선출 방식은 없을까? 국민 대표 평가위원들이 현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판단해서 70%만 살리고 나머지는 탈락시켜 30%만 다시 뽑되 그 30% 지역은 사람을 잘못 뽑았으니 예산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식 같은…. 새로운, 한국 민주주의의 생존을 위해.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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