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픽사베이

I.

1990년 7월 26일, 부시(George H.W. Bush) 대통령은 백악관 남쪽 광장에서 열린 ‘장애가 있는 미국인법(미국장애인법,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약칭 ADA)’ 서명식장에서 인권사에 남을 연설을 했다.

“3주일 전 우리들은 독립기념일을 경축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또 하나의 독립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너무나 늦은 독립일입니다. 이 역사적인 ‘장애가 있는 미국인법’의 서명으로, 모든 장애가 있는 남성, 여성, 아동은 이제까지 닫혀 있던 평등, 독립, 자유의 찬란한 시대에의 문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ADA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극적인 전진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인이라는 높은 긍지에는 다른 모든 미국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함께 이제까지 우리가 쌓아 올린 물리적 장벽(Physical barriers)이나 우리들이 용인해 온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s)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번영할 수 없다면 그 나라는 결코 번영하는 국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년 우리는 국제적인 자유의 승리를 경축한 바 있습니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건너편에 있는 독립의 약속을 잡으려고 장벽을 기어오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본인은 이제 또 하나의 장벽을 헐어낼 해머(Sledgehammer)를 들게 하는 법률에 서명합니다. 수많은 세대 동안 미국 장애인의 ‘엿볼 수는 있으되 잡을 수는 없었던’ 자유를 차단하여 온 장벽을 헐어버릴 해머로, 우리는 미국에서 ‘어떠한 차별도 허용하거나 변호되거나 용인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면서 이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모두와 함께 기뻐하는 바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나는 부시의 이 연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와 같은 연설이 나올 수 있는 미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ADA의 내용이 ‘차별금지’로 집약되게 된 역사적 배경까지 여기에서 살필 수는 없다. 다만 장애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그 흔한 복지라든가, 서비스라는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차별금지’라는 기본개념으로 문제를 풀이하고 접근하려고 했던 미국인들의 철학적 방법론에 주목할 뿐이다.

II.

장애란 환경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정의되어야 할 개념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장애라는 것은 물리적 환경, 교통환경, 통신환경, 주거환경, 의료환경, 교육환경, 노동환경, 사회환경, 언어환경, 문화환경 등 모든 환경과의 연관성 속에서 정의되는 것이다.

턱없는 거리, 계단 없는 건물,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과 버스, 농아인이 이용할 수 있는 통신체계, 맹인이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학교, 모든 장애인이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직장, 장애 비장애를 구별하지 않는 사회제도, 장애인을 별종시 하지 않는 문화···.이런 것들이 갖춰진다면 장애인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지 않겠는가. 장애인을 장애인이게 하는 것은 장애인의 이용과 접근을 막는 모든 종류의 환경의 장벽들이다.

사람들이 수화로 “사랑해”라고 말하고 있다. ©픽사베이

III.

미국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인권운동사를 보면, 미국연방최고재판소는 1896년 ‘프레시 대 퍼거슨’(Plessy vs. Ferguson 163 US 537, 1896) 사건에서, ‘열차 중 백인석과 흑인석을 분리하고 있더라도 같은 열차에 탈 수 있고 같은 조건의 좌석이 확보된다면 평등하다’고 판단하여 ‘분리하더라도 평등하다’(Seperate but equal)는 논리로 흑백차별을 합리화하여 왔다. 그와 같은 논리는 공교육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흑인학교, 백인학교를 따로 둠으로써 흑백분리교육이 계속되게 했다.

그러던 것이 1954년 브라운 판결(Brown I 347 US 483, 1954)에서, 분리된 교육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것이며 ‘분리는 평등이 아니다’(Seperate not equal)라고 판시함으로써 공교육에서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계기를 만든 바 있다.

IV.

‘분리는 평등이 아니다’라는 논리는 바로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타당한 논리라 할 수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리가 아닌 통합’이 이루어져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좋은 시설을 많이 만들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장애인을 위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문명사회요, 선진사회인 것이다.

이제부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이 사회의 물리적환경, 교통환경, 통신환경, 주거환경, 의료환경, 교육환경, 노동환경, 사회환경, 언어환경, 문화환경 등등 모든 환경이 장애인에게 편리하도록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적용될 최우선의 논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의 이동할 자유, 말할 자유, 들을 자유, 공부할 자유, 일할 자유, 문화적생활을 할 자유를 가로막는 자유의 장벽이 너무나 많다. 이 많은 장벽을 때려 부술 또 하나의 망치를 장만하고 뜻을 모으는 마음으로 4월 20일, 제36회 장애인의 날을 맞았으면 좋겠다.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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