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20대 총선은 반사이익의 선거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잘한 것이 없는데 상대 정당이 잘못한 덕분에 많은 의석을 얻었다. 수도권 유권자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심판한다는 의미로 더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 막바지 ‘진박’ 공천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 탓이다.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19대 총선에 비해 13%포인트, 6%포인트나 늘어난 것은 ‘심판 의지’가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콘크리트에 가깝지만 새누리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부서지기 쉬운 흙덩어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15일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열린 국민의당 당선자 대회 및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포커스뉴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수도권과 호남에서 이긴 것은 반사이익

국민의당은 호남을 석권하다시피 했지만 그 역시 잘해서가 아니라 더민주당의 ‘호남 홀대’가 큰 영향을 미쳤다. 거기에다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모으기보다는 당권‧대권 투쟁으로 지리멸렬하는 데 대한 반감이 국민의당에 표를 쏠리게 했다. 국민의당은 정당득표에서 더민주당보다 30만표를 더 얻었다는 이유로 ‘제1야당’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당투표는 후보에게 던진 첫 번째 선택을 보완하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선택지인 정당득표율 역시 반사적 이익의 성격이 짙다.

앞으로 각 정당과 정파는 총선 민의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수용할 것이다. 자기 확신이 강한 박 대통령도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민의를 겸허히 수용하고, 20대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원칙론을 밝혔다.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역할과 행동 반경은 커지고,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은퇴하겠다’고 한 문재인 전 대표는 잠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주목을 받는 정치인은 38석을 이끌어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그가 줄곧 내세운 ‘새정치’를 어떻게 보여줄지, 호남은 물론 다른 지역의 민심은 어떻게 수용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지난 15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국민의당은 단순한 캐스팅보터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정치를 주도하는 국회 운영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다. 그의 새정치는 양당을 싸잡아 비판할 뿐이지, 노선과 비전이 불명확하고 논리적 근거와 철학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더욱이 호남의 세속성과 호남 정신, 호남과 비호남의 모순되고 충돌하는 여론과 가치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후 광주 서구 국민의당 광주광역시당에서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권은희 국민의당 광산구을 후보가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환호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안 대표, 호남의 세속성과 정신, 비호남의 충돌하는 여론 헤쳐나가야

그는 먼저 자신을 지지해준 호남 여론의 향배를 잘 읽고 반영해야 한다.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책을 낸 배재대 김욱 교수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더민주당의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자들’처럼 호남을 홀대하는 세력이 아니라, 호남의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집권당이 아닌 이상 호남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민주주의와 진보적인 가치에 표를 던져온 호남의 정신은 어찌할 것인가. 호남 유권자들을 붙잡아 두려면 호남의 이익에 봉사하면서 동시에 호남 정신을 살려나가야 한다. 안 대표의 새정치는 호남 정신을 의식해 좌클릭할 것이다.

호남의 이익에 복무하면 할수록 다른 지역 유권자들에게 눈총과 비난을 받을 소지는 커진다. 대권을 바라보는 안 대표로서는 자신의 지지가 호남에 고립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난 17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호남 선거 결과는 선물이 아니라 숙제다. 국민의당을 정권교체의 도구로 선택한 뜻을 잘 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호남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을 정권교체의 도구로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찌됐든 정권교체의 도구가 되지 못하면 호남 이익에 복무할 수 없고 호남에서도 외면당할 것이다.

안철수는 국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안철수 공식홈페이지

호남 유권자들도 딜레마··· 안 대표 이제 자신이 한 일로 평가받아야

호남 유권자들도 딜레마에 빠져 있을 듯싶다.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호남을 홀대한 더민주당을 혼내준 것이 후련하기는 하지만 호남의 세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역성과 결합됐던 호남의 가치와 정신이 세속성으로 대체됐다고 하면 지나칠까. 세속성이 강화되면 고립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더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을 홀대했다는 주장은 검증이 필요하다.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등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광주‧전남 출신 인사들은 총선 하루 전인 12일 “입법, 사법, 행정부의 수장이 동시에 호남 출신인 정부는 건국 이래 노무현 정부가 유일했다”면서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호남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위해 참여정부 호남홀대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분열주의자이고 호남을 고립시키려는 불순한 세력으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기만적인 호남 홀대 주장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함으로써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더 큰 정치 권력을 얻으려는 일부 호남 정치인들의 그릇된 욕망을 비판한 것이다.

안 대표는 대권욕을 공공연하게 표현한다. 그는 지난 15일 야권에서 제기되는 ‘2017년 대선 전 후보 통합론’과 관련해 “여야 1대1 구도로는 (새누리당을) 절대 못 이긴다”며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고 했다. 이미 대선을 3자 구도로 상정하고 결선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안 대표가 경쟁력이 있는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반사적 이익이 아니라 자신과 국민의당이 한 일로 평가받아야 한다. 서로 엇갈리거나 모순되기도 하는 여론과 가치를 수렴하고 통합하고 선택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확장성이 생긴다. 이제 그 시작이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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