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 이야기]

친박과 비박, 친노와 친문 등 요즘 언론의 정치 난에는 소위 계파를 칭하는 말이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 흩어지고 때로 뭉치면서 경우와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질긴 인연으로 정치판을 장악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소위 자기와 죽이 맞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뜻이 같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은 사람이다. 눈빛만 봐도 가슴 속의 생각을 읽어내고, 말하지 않아도 심중의 고민을 헤아린다. 따라서 이런 사람과 같이 있고 싶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런 사람과 같이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코드인사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코드(Code)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할 때 나름대로 표현하는 기호이다. 따라서 코드인사라 함은 구체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임명권자의 의중을 읽어내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의 결합은 업무의 효율 면에서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한 쪽으로 치우치는 패거리 문화의 위험성이 있어 경계해야 마땅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앞줄 왼쪽 세 번째, 네 번째)가 지난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신화/포커스뉴스

2010년10월18일, 중국공산당 제17차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약칭:17기5중전회)에서 권력의 핵심인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시진핑(習近平)이 당선되었다. 발표 직후 이 소식은 트위터, 실시간 뉴스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후진타오(湖錦濤)의 뒤를 잇는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서 시진핑의 화려한 등극을 알렸다.

시진핑, 1953년 6월 베이징 출생.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국가 주석. 권력서열 1위. 그는 국무원 부총리와 전인대 부위원장을 지낸 시중쉰(習仲勛)의 장남으로 전형적인 태자당(太子黨:중국고위층자제)의 일원이다. 명문 칭화(淸華)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2000년 푸젠성(福建省) 성장이 된 후 저장성(浙江省) 서기 등 주로 동부 연안 지역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아왔다. 중앙무대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봄 상하이 당서기였던 천량위(陳良宇)가 비리사건으로 낙마한 사건 이후, 현재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李克强)을 누르고 상하이 서기로 중용되면서부터다. 그 후 2007년 제17차 당 대회에서 리커창 당시 상무 부총리를 다시 한번 누르고 사실상 차기 후계자로 낙점 받게 된다.

리커창, 1955년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출생, 현재 중국서열 2위. 유명한 베이징 법대 78학번으로 법학과 졸업 후 뒤에 베이징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43살의 나이로 허난성(河南省) 성장이 되었는데 당시 중국 내 최연소 성장이었다. 2007년10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현재 국무원 총리로서 시진핑과 함께 후진타오 이후의 중국을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다.

코드 인사는 업무 효율 면에서 나쁘다고 할 수 없으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패거리 문화로 치우칠 우려가 있다. ©픽사베이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진핑 이전 중국의 1인자였던 후진타오와 리커창의 30년 가까운 끈끈한 코드이다. 이들의 인연은 리커창이 대학을 졸업할 당시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27명의 우수 졸업생 중 한명으로 졸업장을 받으면서 리커창은 미국 유학을 꿈꾸었으나, 학교 당국의 계속된 만류로 학교에 남아 베이징대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 청년단)서기를 맡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늘날까지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후진타오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1983년 후진타오는 공청단 중앙에서 상무서기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 때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친분을 쌓아 간다. 화장실 청소 등 궂은일도 돌아가며 함께 하면서 이들의 친분은 오늘날까지도 사석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의 정치적 여정에 서로에 대한 의지와 배려가 오랜 세월 동안 녹아 있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1992년 가을 제14차 당 대회에서 50세라는 젊은 나이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후진타오가 첫 번째로 한 일이, 약관 38세였던 리커창을 장관급인 공청단 제1서기로 임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지도자로 오랜 세월 각축을 벌여오던 시진핑과 리커창 두 사람의 경쟁에서 후진타오는 30년 지기이며 그의 분신이기도 한 리커창의 손을 들어 주지 못했다. 이는 결국, 적어도 당시의 중국이 과거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시대처럼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8000만 명이 넘는 중국 공산당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중국의 정치구조와 정치적 계산이 얼마나 복잡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앞으로 우리는 중국 정치의 양대 산맥인 공청단과 태자당의 정치행보를 보면서 거기 얽혀 있는 코드 인사의 면면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절대 권력을 구축해 가고 있는 시진핑의 복심(腹心)이 무엇인지는 모르되 모름지기 코드 인사의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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