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여 시진핑 주석과 단독 오찬을 함께 하는데, 그 메뉴판에 양 정상의 사진과 함께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글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어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2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기회로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모두 발언으로 “작년 9월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주석님과 오찬을 함께 했을 때 말한 무신불립이라는 문구가 기억이 난다. 양국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이끌어 가는 기본정신은 상호존중과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당시 양국 정상 오찬 메뉴판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글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포커스뉴스

‘무신불립’이란 본래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12:7)에 실린 공자님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공자님의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政治)에 관해 묻자, 공자님은 “식량을 풍족하게 비축하는 것(足食), 군비를 넉넉히 갖추는 것(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民信)”라고 대답하였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어쩔 수 없이 나머지 두 가지 중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공자님은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대답했다.

신의가 없으면 설수 없다는 말이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특히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정부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국민들의 신뢰나 믿음을 잃어버리면 결국 나라가 망한다는 뜻이다. 물론 국제 관계에 있어서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신의를 잃으면 그 나라가 굳건히 설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은 불신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곱씹어볼 단어다. ©픽사베이

현재 한국 사회는 어떤가? 선거 때마다 공직에 입후보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공약(公約)을 내세운다. 당선된 이후 이들이 정말로 자기들이 선거 전에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가? 하나같이 공약을 공약(空約)으로 변질시키는 사회, 어디서 믿음이나 신의를 들먹일 수 있겠는가? 공자님의 말씀이 맞다면 정말 망조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지하철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심지어 인천공항에까지도, 어깨띠에, 혹은 팻말에,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문구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들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써 붙이고 다니는 글귀 중 반은 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천당’이라는 말은 뭐라고 진위를 따질 일이 못되니 접어두기로 하고, 적어도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들이 뜻하는 ‘불신지옥’이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이겠지만, 그런 뜻도 일단 접어두고, 불신이 가득한 나라, 불신이 팽배한 사회는 결국 지옥이나 다름 아니라는 뜻이라면 이들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들도 나름대로의 진실을 전파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일종의 아이러니다.

우리 사회는 무신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불신으로 지옥 같은 상태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무신불립(無信不立)’, ‘불신지옥(不信地獄)’ 다시 심각하게 되씹어볼 일이다.[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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