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김광석의 노래에 ‘먼지가 되어’(1976, 송문상 작사, 이대헌 작곡)란 곡이 있다. 그는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라고 노래한다. 사랑의 마음을 감정이입한 대상이 달도 새도 아닌 먼지다. 먼지가 되어서라도 당신 곁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거다. 참 절절한 사랑 노래다. 특이하게 김광석이 부른 ‘사랑했지만’이란 노래에도 먼지가 등장한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그러나 요즘 같으면 먼지를 갖고 이런 낭만적 감정이입을 한다는 건 엄두도 못낼 일이다. 먼지가 공포의 물질이 됐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미세먼지 공포다. 어느 정도인가. 미세먼지는 폐뿐 아니라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등 심혈관계 사망률을 높인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와 아주대 환경공학과 연구팀의 조사에서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때문에 서울·경기지역에서만 한 해 30세 이상 성인 1만5000여명이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한 채 조기에 사망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25일 서울 시내가 미세먼지로 뒤덮여 뿌옇게 흐려져 있다. 이날 미세먼지 농도는 전국적으로 ‘매우 나쁨’으로 나타났다. ©포커스뉴스

미세먼지 공포는 필자에게 어쩐지 ‘신종(新種)’이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럴만도 한 것이 내가 기자가 된 1980년대 초만 해도 대기오염 기사 하면 산성비, 자동차 매연, 아황산가스 등 유해물질에 관한 게 전부였다. 서울 무악재를 힘겹게 오르며 꽁무니에서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던 버스도 기억난다. 1976년 6월 28일자 ㄱ신문엔 “서울시가 매연단속을 실시해 865대의 ‘공해버스’를 적발, 이중 173대를 운행정지 처분하고…”란 기사도 보인다. 1990년 당시 ‘환경처’를 출입할 때도 환경기준은 총먼지만 있었을 뿐 미세먼지는 개념조차 없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미세먼지의 환경기준이 추가된 건 1993년이다.

환경오염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90년대 들어 산성비나 아황산가스·일산화탄소 관련 기사는 확 줄었다. 산업구조 등 변화에 따라 대기오염 물질의 구성비가 크게 바뀐 탓이다. 그 대신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미세먼지다. 미세먼지란 입자 크기가 아주 작은 먼지다. 이것은 다시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인 미세먼지(PM10)와 2.5㎛ 이하인 초미세먼지(PM2.5)로 나뉜다. PM10은 머리카락 지름의 5분의 1 이하, PM2.5는 20분의 1이하다.

당연히 이런 것이 몸에 들어오면 해롭다. 호흡기를 거치며 걸러지지 않고 폐에 침투하거나 혈관을 따라 체내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이란 뜻으로 석면, 벤젠과 동급의 유해물질이다. 이에 따라 국가가 환경기준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걸음을 옮기고 있다. ©포커스뉴스

그러나 이런 관리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환경부에 따르면 미세먼지(PM10) 오염도는 2001~2006년까지 연평균 환경기준(50㎍/㎥)을 넘는 51~61㎍/㎥ 사이를 오르내렸다가 2007년부터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2012~2014년에는 그 수치가 정체돼 다시 환경기준에 근접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그 수치는 2012년 41㎍/㎥에서 2013년 45㎍/㎥, 2014년 46㎍/㎥를 기록해 나빠지고 있다. 특히 황사철인 봄과 난방연료를 많이 때는 겨울에 농도가 짙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대처는 실망스럽다. 인력·장비·예산 부족을 호소할 뿐이니, 획기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환경부를 넘어 정부 차원의 인식과 정책 우선순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개인들이 각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산보도 마라톤도 미세먼지 예보를 살펴가며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여기엔 엄연한 한계가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성찰 없는 근대화의 허점을 파헤친 기념비적 저작 ‘위험사회’(1986)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예컨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은 사적으로 보증되지 않으며 보증될 수도 없다. 원자력 사고는 이미 사고가 아니다. 이 사고는 대대로 지속된다….” 그러면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도 던진다. “사회적으로 인정된 위험은 특이한 정치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까지 비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정치적으로 된다.” 대기의 질은 옛날에 비해 나아졌는가. 미세먼지 문제를 볼 때 아니다. 과연 우리의 삶은 개선되고 있는 걸까.[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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