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 속으로]

“언론사 간부들에게 얘기하면 언론사에서 그 기자는 클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 언제든지 보직을 바꿀 수도 있다.” 2015년 1월, 이완구 당시 총리 후보자는 오찬 자리에 있던 젊은 기자들에게 이런 취지의 호언장담을 했다고 한다. 몇몇 언론사 간부들과 친분을 과시하고, 자신이 직접 방송보도를 막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후보자에 대한 총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부동산 투기 의혹 기사가 쏟아지고 있을 때였다.

비공식석상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발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더 있다. “기사 잘 써, 안 그러면 나한테 맞는다.” 이런 말을 한 모 당 국회의원도 있었다. 청와대 모 대변인 브리핑에서는 기자가 보충 질문을 하자 “영양가 없으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대답했고, 기자가 “영양가는 우리가 판단한다”라고 말하자 대변인이 “영양가는 내가 판단한다”고 응수했다는 전언도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6년 세계언론자유지수. 기자 살해·체포 및 투옥·협박·고문 등 언론인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인 행위와 검열·압수·수색·규제 등 미디어에 관한 사항 등을 50개 항목으로 세분화하여 산출한다. ©국경없는 기자회 홈페이지

최악으로 추락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올해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sans frontières: RSF)가 발표한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180개국 중 70위를 기록했다. 작년 60위에서 10계단이나 추락해 RSF가 언론자유지수를 처음 발표한 2002년 이래 최저치로, ‘분명히 문제가 있는 수준’이다. RSF 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지수로 알려져 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발표한 다른 ‘언론자유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작년에 33점을 기록, ‘부분적 언론 자유국(Partly Free)’으로 분류됐다. 순위는 전체 199개국 중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공동 67위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은 언론자유국(Free)에 속했으나 2011년부터 악화되기 시작해 역대 최저 수준에 이르고 있다. 어느 쪽 자료를 보더라도 한국의 언론은 충분한 자유와 독립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지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 정도, 특정 집단이나 정부가 언론보도에 개입해 보도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언론기관의 소유 및 거버넌스 구조가 보도에 개입해 보도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 기자가 저널리즘을 실천할 자유와 언론인의 권리·이익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는 정도 등등을 계량화해 결정된다. 언론 자유의 문제는 곧 권력의 언론 개입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2016 세계언론자유지수 주요국 순위. 국경없는 기자회는 한국에 대해 “박근혜 정부와 미디어의 관계가 매우 긴장감 넘치는 관계”라며 “정부는 비판을 참지 못하고, 이미 양극화된 미디어에 대한 간섭으로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포커스뉴스

“언론인들, 내가 총장도 만들어주고…”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나, 언론인…지금 이래 살아요.(중략) 언론인 대 공직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니까…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주고 총장도 만들어주고…”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위에 말한 오찬간담화에서 했다는 말이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언론인과 공직자는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공직자는 언론인을 총장도 시켜주고 교수도 시켜주고 한다는 것이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 냄새가 풍긴다.

‘제4부’에서 ‘제2부’로 올라선 언론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제4부(the fourth estate)라 불린다. 에드먼드 버크가 처음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고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주간인 이냐시오 라모네(Ignacio Ramonet)는 경제를 제1부로 끌어 올리고 언론을 제2부로 자리잡게 한 다음, 제3부로 뒤처진 정치와 함께 새로운 삼권분립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자본부의 체제를 배경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경제가 막강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언론도 스스로 권력화하여 정치보다 막강한 통제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은 감시견(watch dog)으로 비유되어 왔다. 제4부라는 개념과 더불어 언론의 규범적 역할을 대변하는 용어로 쓰였다. 입법, 행정, 사법부로 분점된 권력이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시민사회의 복리에 봉사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 감시견이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이 수행해야 할 핵심적 책무는 시민사회의 대변자로서 권력 남용과 오용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일이다.

감시견이 될 것인가, 애완견이 될 것인가 ©픽사베이

감시견, 경비견, 공격견, 애완견

언론이 감시견의 역할에서 이탈한 몇 가지 행태 중 경비견 또는 보호견(guard dog, Phillip Tichenor)이 있다. 스스로 지배권력의 일부가 되어 지배체제를 보호하려는 언론의 행태다. 이들은 시민사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지배체제에 위해가 되는 일부 지배세력에 대해서도 경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지배세력간의 갈등을 이슈화시키기도 한다.

특정 정치적 국면 또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무책임하게 정치인과 특정 가치를 비판하는 공격견(attack dog)이란 비유도 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굴종하면서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애완견(lapdog) 언론도 있다. 감시견이 경비견, 공격견, 애완견으로 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 옆에서 세상 일에는 아무런 관심없다는 듯 잠만 자는 슬리핑독(sleeping dog)도 있다.

땅에 떨어진 언론의 위상. 언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픽사베이

언론자유추락은 권력과 안락한 공생을 택한 때문

이명박 정부 이후 지금까지 해직언론인은 22명에 이른다. 권력이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미국 소고기 수입에 이의를 제기하고, 친일의 역사에 문제의식을 갖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했던 언론인들이다. 해직은 면했지만 사내에서 징계 처분을 받은 언론인들이 수백명은 될 것이다. 감시견들이었다.

감시견들을 내보내고 배제시킨 채 언론들은 경비견이나 공격견, 또 한편으로는 애완견이나 슬리핑독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감시해야 할 대상과 유착하고 일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완구 당시 총리 후보자의 발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냐시오 라모네의 주장도 혜안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가 추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공공재인 언론을 감시견으로 만들고자 했던 언론인들은 쫓겨나고 기소되고 징계받았다. 나머지 언론인들은 언론을 경비견으로, 애완견으로, 공격견으로 변모시키면서 권력과 안락한 공생을 누리고 있다. 뭔가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내년에는 언론자유지수가 더 떨어질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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