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지난 4월 영암 F1 경기장에서 CJ 헬로모바일 슈퍼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이곳은 세계적인 자동차경기장을 목표로 건설했으나 19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전남도

작년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을 컨설팅하고 있는데 우선 눈에 걸리는 것이 건물만 덩그런 문화회관들이다. 통상 건축비가 200억원 수준인데 연중 가동률은 20% 미만이라고 한다. 고작 20%라니. 기업에서 공장 가동률이 60% 미만이면 바로 파산이고 공장장은 감사 대상이다.

문화는 신축공간보다 먼저 문화 마인드와 활용이 생명이다. 중국 798 예술구는 중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예술특화지구이다. 베이징 다산쯔(大山子) 지역에 위치하는데 원래 이곳에 있던 공장들의 일련번호가 798이었던데서 동 명칭이 탄생했다. 테이트 모던이나 뉴욕의 소호지역과 마찬가지로 버려진 공장지대에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뒤따라 갤러리가 들어서고 카페와 음식점이 생겨났다.

이런 곳은 가동률이 100% 이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가동률 20%라도 일단 짓는다. 파주 영어마을을 가보라. 현황이 어떤지. 돈이 많아서다. 감시할 기관이 없어서다. 그러니 먼저 먹고 튀는 김 선달이 장땡이다. 전국 260여개 지자체에 그동안 지어진 문화 공간이 얼추 잡아도 300~400개, 건축 비용을 100억원씩만 잡아도 누계 최소 3조~4조원이다. 인건비와 공연료, 리모델링비를 빼고도 그렇다. 가계 부채 1000조원에 비하니 콩알 같은가? 그런데 이 돈이면 스타트업 3만명에게 1억원씩 지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돈 대부분은 수도권 사람들이 낸 세금에서 나간 것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열린 제2회 궁중문화축전 개막제에서 경복궁의 역사를 빛으로 담아낸 ‘미디어 파사드’ 공연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포커스뉴스

생생 문화재 프로젝트를 활용하니…

작년에 서울에 있는 창덕궁, 덕수궁,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 종묘, 운현궁 등을 돌아봤다. 원래 있던 대궐이었다. 무도한 일제가 훼손한 대궐의 70%는 복원되었다. 문화 해설사들의 전문적인 해설과 창덕궁 ‘후원의 아침’ 같은 공개 행사 등을 통하니 우리 건축 철학과 디자인 미학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잃어버린 유산을 찾았구나 싶었다. 한복을 입은 아가씨도 보인다. 이는 문화재청이 보존 중심에서 활용을 병행하기로 결정을 하면서부터 생긴 변화이다. 보존 중심이던 문화재청에는 활용국이 신설되었다. 생생 문화재 프로젝트가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런 정책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하지 못할 것이 없다.

하드웨어 투자는 당장은 유혹적이다. 지역 국회의원들 생색도 나게 해줄 뿐더러 지방 토목업의 반짝 활성화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눈으로 보이는 도로 인프라와 건축물로 지자체 사람들의 감탄도 얻을 수 있다. 정책 시행 평가도 용이하다. 실제로 문체부 공무원에게 들어보면 아직은 하드웨어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속내를 안 들어봐도 척이다. 문화 행정이 정치논리에 예속된 경우다.

지자체가 앞 다투어 짓는 경기장 상황도 만만치 않다. 떠들썩했던 영암 F1 경기장은 예상했던 대로 현재 F1을 포기한 상태다. 대신 국내외 자동차, 바이크 경주 대회를 수시로 여는데 이로 인한 임대 수입이 2014년 32억원, 2015년 36억원에 올해 예상 수입은 40억원이라고 한다. 지출 평균 금액이 30억원대이니 3년 연속 흑자 경영이라고 홍보한다.

우스갯말로 세 팔자가 있다고 한다. 밥 짓는 팔자, 밥 먹고 튀는 팔자, 그것을 설거지 하는 팔자. 지금 영암이 딱 그렇다. 흑자 설거지하시는 분들 공은 치하하더라도 문제는 누적 적자가 1900억원대라는 것이다. 1900억원어치나 먹고 튄 사람이 있다는 말인데 1년에 7억~8억원씩 흑자를 남겨 1900억원 적자를 메우려면 몇 년? 무려 250년이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심히 미약하리라’ 경우다. 충주 세계조정경기장,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장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혈세만 빨아들이는 이 공간들을 어찌할 것인가.

코오롱FnC의 컨테이너 복합쇼핑몰 커먼그라운드. 하이터치 설거지의 핵심은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융복합 재생하는 것이다. ©코오롱FnC

융복합 재생하는 하이 터치 설거지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하이 컨셉트, 하이 터치 시대라고 했는데 이 공간을 하이 터치해보자. 일단은 앞으로는 문화회관, 전시관, 창작 공간, 혁신센터 등을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거나 컨테이너, 조립식으로 짓는 것이다.

청계천에 둥지를 튼 문화 창조 벤처단지는 기존 관광공사 전체 20층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90여개 문화테크놀로지 벤처회사들이 입주해 서로 융복합을 추진하도록 운영된다. 좋다. 코오롱 FnC가 건국대 앞에 지은 커먼그라운드는 200여개의 컨테이너로 만든 건축물인데 푸드 트럭과 수시 이벤트를 연계, 단기간에 젊음의 명소가 되었다. 영리하다. 최근 서울의 숲 입구에 개장한 언더스탠드 애비뉴도 ‘혁신·공익 창조 공간’을 표방하며 유휴 부지 4126㎡에 중고 컨테이너 115개로 만든 건물이다. 틈을 잘 찾았다. 이런 건물은 건축비용이 적게 들고 필요가 다하면 얼마든지 해체와 이동이 쉽고 확장할 때도 유연한 증축이 가능하다. 또한 이용자들에게 위압감을 덜어 주어 친근감을 줄 수 있다.

소프트웨어로 돌아가 보자. 하이터치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설거지 핵심은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융복합 재생하는 것이다. 재생은 소프트 개발과 국내외 다양한 콘텐츠를 융복합, 해당 지역의 시민들 문화 마인드 형성에 초점을 맞춰 가동율 50%를 목표로 한다. 한국의 문화영웅과 지역 문화회관의 연고제는 어떤가? 한 문화회관 당 한 문화영웅(K-스타 포함)을 맺어줘 그들 기념관과 레지던스를 만들어주고 팬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산이 신령스러운 것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령이 있어서’라고 했다. 박경리 토지 마을, 조정래 태백마을, 이외수 감성 마을, 전유성의 철가방 개그 극장 등은 신령 마케팅으로 성공했다. 또 있다. 문화회관이라고 폼 잡지 말고 상업 웨딩을 대체할 문화 웨딩 장소, 문화가 함께 하는 지역 동아리 허브로 대여해 보라. 캠핑과 푸드 트럭, 버스킹을 문화공간과 연결시키거나 주말 문화와 디자인 장터를 여는 발상 등도 좋다. 실제로 갤러리에서 밤에 내부를 캠핑 촌으로 개방해서 호응을 얻은 바가 있고 마르쉐@나 양평 리버 마켓 등 민간이 주도한 디자인 장터는 대부분 호황이다. 문화공간재생 사업은 문체부가 민간에 위탁해 하는 것이 좋겠다. 공무원스럽게가 아닌 ‘파격적인’ 이게 중요하다. 전유성 같은 역발상 리더가 문화회관 재생 센터를 운영하면 파격적인 기획을 할 것이다.

이를 내수용이라고 보지 말자. 중국도 벌써 유령 건물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들도 곧 한국과 같은 문제에 부딪칠 것이다. 그때 K-문화재생 노하우를 우아하게 수출하면 된다.[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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