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 이야기]

“포장마차가 아니라 기업이구나.”
오랜 중국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내가, 친구와 함께 잠실역 근처 포장마차 촌에 들렀을 때 터뜨린 일성이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동네 어귀에 있는 포장마차는 돈 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소주 한 잔에 꼼장어나 오뎅 국물 등으로 뱃속을 녹이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당시의 포장마차는 가게 얻을 돈이 없는 사람들이 리어카에 간단한 안주 거리를 싣고, 동네 어귀나 빈 터 외딴 곳에 덩그러니 손님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이러한 나의 포장마차에 대한 생각은 수많은 포장마차가 한 곳에 모여 흥청거리는 모습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런 대규모 포장마차 촌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수도 없이 형성되어 있다는 친구의 말은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플리커

생활이 선진화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모든 면에서 효율성이라는 것을 따지게 된다. 이는 때로 비정(非情)하고 지나치게 원론적인 면이 부각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당연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효율성으로 인해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은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주요 사업 중 하나는 한국의 스테인레스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주 고객은 상하이 인근 대만계 PC컴퓨터 제조업체였다. 우리는 품질이 우수한 한국산 스테인레스를 장기계약으로 공급하고 있었다.

잘 나가던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은 역시 효율성에 의한 무역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동안 한국에서 스테인레스를 수입해 가던 PC업체들이 더 이상 한국에서 가져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만의 한 기업이 이 지역에 스테인레스 가공 공장을 차렸던 것이다.

이들은 업체에서 원하는 규격과 품질을 즉석에서 공급하기 시작했다. 신용장을 개설하고 선적을 하고 물건을 받은 후 다시 로컬 가공업자에게 적정 규격으로 가공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을, 이 대만 업체는 일거에 해소해 주었다.

우리 역시 생존을 위해 이 지역에 스테인레스 가공 공장을 세웠고 이러한 가공 공장은 광둥성(廣東省)등 PC컴퓨터 밀집 지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산지역이 동남아나 충칭 등 내륙지역으로 다변화되는 추세이지만, 한 때 상하이(上海)주변, 쿤산(昆山:곤산)이나 쑤조우(蘇州:소주)등 장쑤(江蘇:강소)와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일대에서 세계 노트북 PC컴퓨터의 80% 가까이를 생산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전 세계 노트북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그들은, 생산부품의 70~80%를 공장 주변에서 자체 조달하고 있다.

기업의 국적이 사라지는 세계화 물결 속에서 주류에 합류하지 못한 기업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픽사베이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포장마차가 군집을 이루고 대형화하는 것도 마케팅이나 원료 수급 등 제반 효율성을 감안한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최근 클러스터(Cluster)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마치 포장마차처럼, ‘비슷한 업종의 업체끼리 일정 지역으로 몰리는 것’을 얘기하는데 대덕단지의 연구개발혁신 클러스터나 창원의 첨단기계 클러스터, 울산의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헐리우드는 대표적인 영화산업 클러스터이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기업의 국적이 없어짐을 의미한다. 국적에 관계없이 오직 지역별, 업종별로 통합되는 수순이 남았을 뿐이다. 포장마차 촌에 합류하지 못한 포장마차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의 기업들은 자기에게 맞는 클러스터를 선택해서 이전해야 하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 그 클러스터가 어느 나라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의 효율성을 따져야 할 뿐이다. PC업체의 원료를 공급하던 내가 상하이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치이다.

중국 경제를 낙관하는 사람들은 중국 클러스터의 흡인력을 얘기한다. 이 흡인력은 제반 비용이나 물류 시설, 입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반영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장일 것이다. 14억 인구의 중국은 지금 블랙홀처럼 세계의 관련 기업을 끌어 들이고 있다. 북부와 남부, 해안 지역과 내륙지방을 망라하여 일사분란하게 산업별 경제권을 형성해 가고 있다. 그리고 세계의 관련 일류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일등이 세계의 일등이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이다. 같은 클러스터 내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이들 세계 일류들과의 또 다른 승부에서 이겨내야 한다. 세상과 떨어져 있는 포장마차는 나름대로의 풍류가 있지만 살벌한 경제 전쟁에는 낭만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이미 우리가 아니다. 실력 있는 사람에게는 세계가 넓으나 실력 없는 사람에게는 더욱 설 땅이 없다는 것이 세계화의 아이러니다.[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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