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에서 쓰는 편지]

지난 겨울 오로라 취재를 위해 유럽으로 떠나면서 휴대전화 데이터 로밍 차단 신청을 했습니다. 돈을 아끼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잠시라도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보자는 심사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호텔 같은 곳에 묵으면 와이파이를 쓸 수 있으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을 텐데, 캠핑카에서 먹고 자는 일정은 세상 모든 것과의 단절을 뜻했습니다.

©픽사베이

내 나라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안 보고 안 들어도 그만이지만, 글 쓰는 데 필요한 자료 검색 수단까지 막혀버리니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유람이 목적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는 여행자로서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거기까지 예측하지 못하고 차단시킨 게 미련한 짓이었지요. 자료도 자료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드나들던 SNS에 소식 한 줄 올릴 수 없는 것도 심각한 금단증상을 불렀습니다. SNS 중독이야말로 치명적인 중독이니까요.

스마트폰에 철저히 종속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심지어 책조차 전화기 액정을 통해 읽고 있으니까요. 스마트폰이 없으면 먹고 자는 것 외에 대부분의 일상생활이 마비되는 현실. 저는 이미 헤어나기 어려울 만큼 깊은 수렁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국 북유럽을 지나면서 통신사에 연락해서 데이터 차단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마트폰 중독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스마트폰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시간을 제어하는 장치가 고장 났는지 일정을 기록해 놓은 달력이 뒤죽박죽 엉켜버렸습니다. 느닷없이 2014년이 펼쳐지고, 적어둔 메모들 역시 앞뒤가 바뀌어 배열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달력이 엉켰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약속이 엉켰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약속이 엉킨 것은 내일의 삶이 엉킨 것과 같은 의미고요. 수첩은 안 가지고 다닌 지 오래고 모든 예정사항을 스마트폰 달력에 기록하니까요.

결국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잖아도 제법 오래 쓴 데다 액정까지 깨지는 바람에 핑계 김에 얼른 교체하고 말았습니다. 프로그램이 얽히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휴대전화를 바꾼 가장 이유였습니다. 평소에 백업을 한다고 하고 있지만, 저장해둔 기록들이나 사진이 어느 날 느닷없지 지워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10명 중 3명이 스마트폰 중독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학생(33.0%), 고등학생(27.7%), 초등학생(26.7%), 대학생(20.5%) 순으로 스마트폰 중독률이 높았다. ©통계청/포커스뉴스

얼마 전에는 신문을 읽다가 놀랄만한 기사를 하나 봤습니다. ‘만 3~5세 유아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성인보다 심각’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5년 스마트폰‧인터넷 과(過)의존 실태조사 결과’라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성인(만 20~59세)의 스마트폰 고위험군은 2.1%인 반면 유아는 2.5%로 성인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금단현상, 내성, 일상생활 장애 등 세 가지 증상을 모두 보이면 고위험군, 이 중 1~2개 증상을 보이면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이라고 한다지요.

이런 수치는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스마트폰에 노출됐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음식점 같은 곳에서 아기들이 울거나 보채면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장면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기들은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치고 스마트폰 안으로 빠져듭니다. 그게 계속되면 중독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요. 물론 심각한 것은 유아들뿐이 아니지요. 청소년 10명 중 3명은 하루 5시간 이상 스마트폰에 빠져 산다고 합니다.

중독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의미가 그렇듯, 스마트폰 중독 역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신문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나타나는 증상을 함께 보도했습니다. 경미하게는 짜증과 신경질부터 시작해서 심각할 경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보이기도 한답니다. 손목터널증후군, 안구건조증, 소음성 난청 등 신체질환도 빈발한다고 하고요,

정부에서도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9개 부처 합동으로 예방대책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인형극이나 연극 등을 통해 유치원,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매년 6만 명 규모의 예방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인데요, 정말 효과가 있을지 장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발달할수록 종속을 지나 노예가 될 것이라는 상상은 이미 상상을 넘어선지 오래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족끼리 외식을 가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이야말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는 전조일 것입니다.

정부에 모든 것을 맡기기 전에 가정이 나서는 방법도 찾아봐야겠지요. 어린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 어른들 스스로 자녀들과 함께 사용을 줄여나가는 방식의 가정 내 캠페인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스마트폰에 달린 게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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