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얼마 전 독서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부담스러웠지만 거절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지난 몇 년 간 어떤 책을 읽었는지 살펴봤다. 마음을 다스리는 책들이 많았다. 그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한 서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포커스뉴스

예전에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비울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공자가 40세 불혹(不惑), 50세 지천명(知天命), 60세 이순(耳順)이었다고 말했듯이, 육체적으로 힘이 떨어지면 마음도 점차 순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남의 말을 들어도 거슬림이 없는 이순의 경지에는 좀처럼 오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요즘이 남의 말이 거슬릴 때가 더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간 읽은 책에서 밑줄을 치거나 메모한 부분을 훑어보니 나는 분노와 불안이라는 병에서 치유되기를 희망했던 것 같다. 앤서니 드 멜로가 지은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를 읽으며 마음에 닿은 구절들을 적은 메모는 이렇다. ‘모든 고통은 당신의 무의식적이거나 이기적인 기대, 요구, 갈망에서 나온다. 당신은 당신이 바라는 대로 그들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지만 그들은 당신이 바라는 대로 움직일 의무도 없고 능력도 없다. …고통과 분노는 당신 안에 있다.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당신의 기대다. 그들에게 기대하지 말라. 기대를 버려라.’ 당시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내 이기심을 돌아보고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가톨릭 신자이지만 믿음이 약한 나는 오랫동안 미사나 예배에서 죄책감을 내려놓아도 되는 것인지 자문했다. 그러다가 ‘나를 닮은 너에게’, ‘주여 왜?’, ‘미사일’(미사 참례하는 사람들의 일상 살기)을 읽으면서 내 나름으로 공통의 답을 발견하고는 정말 기뻤다. 물론 성찰과 회개가 그 전제다. ‘하느님은 미사에서 우리의 죄악, 잘못, 죄책감 등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내려놓도록 초대하신다. 우리는 질투, 슬픔, 선입견처럼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주님께 맡겨드린다. 제단 앞에 분노와 다른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는다. …사랑하는 주님, …제 불순함과 저의 다툼, 불순종, 게으름, 불친절, 참을성 없음, 무례함, 도둑질, 거짓말, 분노, 무절제, 탐욕, 끔찍한 자만심을 떠맡아 주소서.’

고통은 오랜 화두였는데, ‘주여 왜?’를 읽으며 의문이 조금 가셨다. ‘고통은 사랑의 학교다. 고통을 받게 함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우리가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준다.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다면 우리는 일생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피로가 없이 휴식을, 슬픔이 없이 기쁨을, 어둠이 없이 빛을, 미움이 없이 용서를, 오류가 없이 진리를 알 수 있겠는가.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주 추악하게 될 것이다. …죄 없는 사람들이 왜 고통을 받는지 진정으로 알고 싶은가. …예수님이 가신 길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픽사베이

7~8년 전쯤 읽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의 ‘인생수업’,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투 안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지금도 가끔씩 들춰 본다. 삶과 죽음을 화두로 삼은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인생수업’의 두 저자는 이렇게 전한다. ‘수없이 많은 임종의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뉘우칩니다. “난 한번도 내 꿈을 추구해 본 적이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 “난 돈의 노예였어”하고 말입니다. “사무실에 좀 더 늦게까지 남아서 일할 걸 그랬어”라거나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길에 집중해야 합니다. 돈이나 물질적인 부보다 훨씬 가치 있고 본질적인 것들로 데려가는 길에.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대신 “이만하면 충분해”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한데 그 본질적인 것에 놀이가 꼭 필요하다는 가르침은 충격적이었다. 큰 깨우침으로 다가왔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즐겁게 지낸 놀이의 순간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던 거 기억하니?”, “바닷가에 간 일 기억나?”, 그들은 아이들과 공원에 놀러간 일요일 …을 회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는 요즘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 여러 책의 저자들에게 영감을 준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대목이 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 멈추어 서고자 합니다. 희망의 모험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손에 쥔 유일한 시간은 지금뿐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의 존재 여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의 재산은 현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 지상 삶을 영원한 삶의 과정 속에 삽입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인 지금 이 순간에 멈추어 서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분노와 불안과 우울로 채우는 것이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규제 없는 시장경제의 무한한 성장과 진보를 믿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가 지구촌에 사는 우리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204항은 ‘현대 세계의 상황이 야기하는 불안과 위기 의식은 집단 이기심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의식 안에 머물 때 탐욕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참다운 공동선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좋은 책은 위안과 평화를 줄 뿐 아니라 우리가 나아갈 방향도 가르쳐 준다. 한데 과연 우리는 인간의 온전한 발전과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