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서울의 세종로는 너비 10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길이다. 지금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할 때 너비 58자(尺) 규모로 뚫은 대로로서, 정부 관서인 6조와 한성부 등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 하여 ‘육조거리’라 부르기도 했다. 길이는 600m로 짧지만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상징하는 중심도로다. 마땅히 여느 곳보다 중요한 도로로 대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이 도로에 문제가 많다. 2주 전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주변 세종대로(2014년 시행된 새 도로명)에 대해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포장도로가 파손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인가. 깔린 박석(薄石) 포장 곳곳이 깨지고 있다. 2011년 2차례 집중호우로 60곳이 파손돼 대대적 복구공사를 했다. 그 뒤로도 포장한 돌들이 깨져 차량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게다가 파손된 곳은 박석으로 복구하지 않고 검은 아스팔트로 땜질해 흉해 보인다.

서울시가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기로 한 광화문광장 주변 세종대로. ©서울시

서울시는 세 가지 정비 방안을 놓고 시민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아스팔트로 교체하는 방안, 돌 포장을 새로 하는 방안, 현 상태에서 유지·보수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각각의 방식은 비용, 안전성, 쾌적성 측면에서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한다. 시는 그걸 저울질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결정하기에 앞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면면한 날림·부실공사 전통이다. 전통치고는 참으로 찌질한 전통인데,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이곳 세종로에서도 전통은 지켜졌다. 1966년 9월 30일 세종로 지하도(통칭 광화문 지하도)가 개통됐다. 그때 “우리는 동양에서 제일 크고 아름다운 지하보도를 만들었다”고 자랑한 사람은 ‘불도저 시장’으로 불린 김현옥이었다. 놀라운 사실이 있었으니, 이 공사가 단 164일(5개월 보름) 만에 끝났다는 점이다. 김시장은 기일에 맞추기 위해 물불을 안 가렸다. 시멘트를 빨리 굳히려고 보일러를 때게까지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지하도는 완공 뒤 허구한 날 보수공사를 해야 했다. 바닥과 벽면에 금이 가고 지반이 침하했으며 지하수까지 새어나왔다. 시민들이 구두를 벗고 바지를 걷은 채 지나야 하는 일도 있었다. 불도저 시장은 결국 1970년 4월 마포구 창천동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로 물러났다.

여기서 우리는 데자뷰를 느낀다. 광화문광장 주변 세종대로 좌우의 박석 포장도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 ‘국가 상징거리’를 조성하겠다며 추진했다. 2008년 9월 시작해 불과 9개월 만인 2009년 6월 완공됐다. 건설에 42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완공 후 얼마 되지 않아 돌 사이가 벌어지고, 도로 일부가 내려앉기 시작해 7년 만에 전면 교체가 검토되기에 이르렀다. 역시 날림·부실 공사의 대가인 것이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청 관계자들이 파손된 보도블럭을 정비하고 있다. ©동안구청

그러면서 떠오르는 건 고대 로마의 도로 건설 기술이다. 특히 “돌 포장 구조가 일정 규모 이상의 차량과 교통속도에서 파손에 취약하다”는 시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대목에서 그렇다. 고대라고 했지만 로마 제국 때 만들어진 일부 도로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가령 BC 312년 로마~카푸아 첫 구간이 건설돼 이탈리아 남쪽으로 뻗어 내려간 돌 포장도로 ‘아피아 가도’가 그렇다.

물론 외국 사례, 그것도 까마득한 옛날 일을 오늘의 한국과 단순비교 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도 더 전 건설된 도로 위로 오늘도 자동차들이 잘 달리는 것을 보면 정말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로마시대 도로 포장은 4개 층으로 두께가 1~1.5m나 되며 빗물도 잘 빠지게 설계돼 있다고 한다. 우린 국가 상징도로 하나 제대로 못 닦고 있는데….

한국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고 소식이 들려오는 나라다. 이런 현실과 세종로가 겪는 진통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은 기술이나 돈이 부족해서일까.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생각과 자세, 즉 철학의 문제라고 본다. 세종로가 7년 만에 저 지경이 된 것, 남을 의식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에게 참으로 망신스런 일이다.[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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