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모 건강식품 벤처회사 J 대표를 만났다. 약사 출신임에도 약과 합성이 몸을 병들게 한다는 신념이 강고한 그는 이야기 중에 “이제는 영양보다 해독(解毒)의 시대”라는 선언의 말을 했다.

©플리커

이제 해독과 비움의 시대다

디톡스(Detox)를 그냥 광고 표현 정도로 듣던 나였지만 영양과 대비한 이 선언은 새로웠다. 영양 충족이 목표였던 한국 아닌가! 그는 대안으로 천연 비타민과 흡수율 100% 나노 추출 공법 개발에 인생을 걸었다.

기업예술교육 벤처 K 대표도 만났다. 그는 10년간 그 부문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는 “기업 교육이 이젠 채움보다 비움을 말해야 하는 시대”라는 말을 했다. 신경계의 기본 단위인 뉴런(Neuron)에서 착안하여 뉴 런(New Run) 시대라는 말도 했다. 이제 40대인 이들 두 대표의 시대 선언, 참으로 공교롭다. 창조 경제, 문화 융성 하는 시대에 해독과 비움을 말하다니!

어쩌면 나도 욕구, 욕망 그리고 성찰의 시대라는 주제에 관심이 쏠려서 그들의 선언이 크게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욕구의 시대를 지나 지금 욕망의 시대 절정을 달리는 중이다. 욕구(Needs)는 결핍이 채워지면 끝이다. 한국의 중산층 한 가구가 이사를 가면 예전 유목민족 한 부락이 이사하는 것만큼 짐이 많다니 욕구는 상당 부분 채워진 셈이다.

반면 욕망(Desire)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여 행동하고 사고하는 심리적 상태이다. 욕망은 끝이 없다. 그래서 계속 채우려 한다. 늘 ‘더 많이’를 원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근 소설인 ‘제3인류’에는 미래 세계의 변수가 될 7세력이 나오는데 그중 제1 세력이 더 많이 세력이다. 이들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여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얻기를 욕망한다. 이들은 지구적 자원 고갈, 뚱뚱한 성장의 위기, 시민들의 정신적 황달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역사는 더 많이 투쟁의 기록이며 이로써 인간은 구원된다고 믿는다. 오케이, ‘더 많이’- 그동안은 사실 고마웠다. 어쨌든 우리는 더 많이 갖게 되었다. 그런데 고맙다 하다 보니 우리는 지금 어찌 되었나?

‘미생’의 마 부장은 우리 시대 관리자의 표상이지만, 어느덧 고정관념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tvN 미생 캡쳐

몸과 기업의 해독과 비움

먼저 몸부터 보자. 채우고 채우다 오늘날 우리 몸은 어느덧 꽤 오염되어 버렸다. 약 오남용, 더 많이 만든 중금속 먼지, 비만과 당뇨 고혈압을 부르는 과식과 가공식품…. 거기다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과시해야 하는 정보 부담. 늘 바쁜 일정 때문에 쉬지 못하니 간이 부담이 되고 세포가 억눌려 있다. 그래서 면역력이 약화되고 혈류는 둔해졌다. 풍요의 시대에 오히려 돌연사와 우울증, 암 등이 늘어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음은 기업의 사람들을 보자. 우리 대다수가 기업을 통해 생존을 하니 기업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여기도 오염은 심각하다. ‘미생’의 마 부장을 떠올려 보라. 마 부장은 우리 시대 관리자의 표상이고 관리자는 미생들의 목표이다. 10여년 쉴 새 없이 달려오는 동안 마 부장의 몸은 노화됐고 관리자이니 머리를 더 쥐어짜야 하지만 별로 더 나올 것이 없다. 인재는 기업을 기피하고 신제품과 마케팅에 창조적 사례가 적고 기업 생산성이 몇 년째 하락 중인 것이 한국 기업들의 마부장화(化)를 증명한다. 세상의 변화는 빠른데 마 부장 자신은 어느덧 고정관념 덩어리가 되어 미래를 과거로 채운다. 마 부장도 원치 않았던 현재일 것이다.

새벽형 인간이 좋다니 아침을 달리고 학원을 다니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정신의 포토 월에 시간 오남용, 혈압과 당뇨, 충성 쇼, 나만의 승진 일정표를 그려 넣은 것들! 어느 때는 그런 마 부장들에게 다음처럼 묻고 싶기도 하다. 사막의 여우와 뱀과 대화하는 어린왕자의 교훈은 기억하는지, 정신의 세계를 사는 여성을 만나면 왜 낯선지, 10년 뒤 후배들에게 와우! 소리를 들을 수는 있겠는지… 등은 생각 하냐고.

©픽사베이

리필과 리셋

30대는 그럼? 복근남 몸매 만들고 스펙 쌓는다고 새벽부터 바쁘기는 마찬가지. 루저(Loser) 되지 않으려고 쿡방과 맛집 셰프와 테라로사 위치, 쇼핑 몰 서핑에 해외 직구 사이트 뒤적뒤적, 거기다 최신 게임에 일드, 미드는 봐줘야 하고 야구 성적과 걸그룹 노래 제목 정도는 기억해야 한다. 벨기에 공항 테러와 베네수엘라 경제 몰락 등도 상식으로는 챙겨야 하고 틈틈이 돈 모아 유럽 여행도 갔다 와야 겨우 안 꿀리는 정도다.

sns에 행복한 척 글과 사진을 채워야 하는 것도 왕 부담. 채우고 또 채우고 더 채우려니 항상 허덕댄다. 거의 채움 중독인데 희한하게도 채울수록 타인과 비슷해지고 열정 대신 편두통만 늘어난다. 기업에 긴 여정을 짜고 틈틈이 자신을 비우는 현자는 적고 욕망의 N포 직원들만 와글와글. 혹 다음 같은 상태는 아닌 건지? 아이디어를 내라면 자기 가슴보다는 검색 창을 뒤지거나 대행사만 닦달하고 PPT 멋지게 꾸미는 정도의 기획력과 개콘 수준의 유머 감성, 딱 맛집 수준의 디자인 안목과 연 15일짜리 해외여행 떠나는 정도의 모험심만 가진 상태!

위대한 기업이라면 채움 중독에 빠진 이들에게 다음 한 주짜리 리필보다는 10년을 생각하며 리셋하라고 권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의 뉴 런이 가능하려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인지?’ 묻고, 더 큰 기원(Origin)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픽사베이

자연성에 기대고 ‘왜’를 묻자

기업이 안 움직이면 개인부터 해독하고 비워라. 그래야 한국의 뉴 런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먼저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인지?’ 물어야 한다. 자연성은 우리 몸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걷고 춤추고 노래하고 좋은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맛있게 감사하며 먹고 뭔가를 직접 만들고 더 큰 기원(Origin)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성에 가까운 것이다.

그 다음엔 자연성에 기대서 왜를 물어야 한다. 왜 일하는 거지, 왜 승진해야 하지? 그러면 중요한 것과 작은 것을 가릴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겨야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아이디어 그룹인 이데오(IDEO)의 작업 방식인 디자인 씽킹 시작은 관찰 - 공감 - 감정이입이다. 오늘날 대기업이 늘 바쁜 데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대상에 공감하고 감정 이입하는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해독하지 않고 비우지 않아서다.

정리하자. 지금 개인과 기업은 혈압은 거센데 혈맥은 좁은 동맥경화 환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해독과 비움이 필요해졌다. 길게 가려면 경영자들은 직원들의 비움을 지원하고 마 부장을 해독하라. 비움이 오염을 해독하며 혈류재생과 면역 기능을 제공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