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구한말(舊韓末)에 어떤 몰락한 양반이 있었다. 당장 입에 풀칠조차도 어려울 정도로 곤궁했고, 소일거리라는 것도 고작 ‘어떻게 하면 한몫을 잡아 난국을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공상과 상민 앞에서 돼먹지 않은 거드름이나 피우며 공술 얻어먹을 궁리를 하는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 머물며 조선의 생활 풍속을 그림으로 남긴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의 <내시>. 그림 속의 내시는 구한말에 왕을 섬기던 실존 인물이다.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휴머니스트

이미 나이가 들어 벼슬길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했던 그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자식이 과거에 급제하여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해진 이 시험제도를 통해 출세하기엔 뇌물을 쓸 돈이 집안에 있었을 리 없고, 민산(民山)이나 연청(聯靑), 노사모, 박사모쯤 되는 외곽 지원부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던 데다가, 모든 것에 우선할 정도의 실력도 없는, 그저 덜렁 불알 두 쪽만 있는 그 자식으로선 그야말로 난망이었다.

그래도 오직 그 자식을 통해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지라 몰락한 가문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업고 그의 찬란한 잔머리는 급기야 ‘자식을 환관(宦官) 시켜야겠다’는 참으로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환관, 내시가 되면 왕실의 측근이 됨은 물론, 운이 좋아 출세를 거듭할 경우 대감 벼슬까지 할 수 있고, 또 어찌어찌하다 보면 막대한 재물이나 이권이 자신과 자기 집안으로 돌아오리란 가슴 뛰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드디어 그는 철모르는 아들의 불알을 까서 고자(鼓子)로 만들었다. 그 용의주도함으로 찬란한 보라빛 인생을 꿈꾸며 아들의 입궁을 기다리던 어느 날.

1894년 5월 23일. 김홍집을 필두로 한 친일 개화정권이 고종 31년에 주도한 갑오경장은 그의 꿈을 산산이 깨트리고 말았다. 개화당 정권의 탄생으로 정치제도가 근대적으로 개혁되고,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기왕의 내시들조차 대부분 퇴출당할 판에, 내시의 ‘신규임용’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환관제도는 사라져 버렸다. 그의 꿈도 사라져 공연히 자식만 성불구자로 만든 셈이 됐다. 소설가 유주현은 고자의 개념을 ‘뜻은 있으나 불가능한 자’로 정의한 바 있는데, 아버지가 설쳐서 아들을 고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고자대감이라는 전무후무의 야비한 별명을 얻어 자식의 원망은 물론 망신스럽게 살다가 생을 마쳤다고 한다.

‘맛이 가거나, 맛이 덜 든’ 정치판 선수들은 마치 고자대감의 활약으로 보인다. ©픽사베이

격변기에 시대를 분변하지 못하고, 분별하지도 못하는 지식인의 잔머리는 이렇게 자식의 인생을 망치고 자신 역시 개망신을 당하게 된다. IMF와 국제금융 위기 사태를 겪고 나서도, 아직도 장기 경제불황으로 온통 나라가 뒤숭숭한 지경에도, 북한의 핵문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계파 싸움과 정쟁과 밥그릇 쟁탈전으로 날을 보내며 온 나라를 흔들고 시간을 뒤로 돌려놓는 ‘맛이 가거나, 맛이 덜 든’ 정치판 선수들의 불꽃 튀는 ‘잔머리와 술수’를 우리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수도 없이 보고 듣고 있다. 내 눈에는 마치 제 자식을 고자로 만든 고자대감의 활약으로만 보인다.

그들은 정치적 판단이나 결단이 혹여 국민과 민족과 역사를 위해 내려졌다고 핏대를 세우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믿는 국민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나 논리가 전부가 허망하고 근거 없는 것들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논의나 어젠다의 주제가 될 뿐 국민들을 고자로 만들어버리는 명분까지는 안 된다.

고자대왕을 막는 건 결국 우리 몫이다. 최근 캘리포니아 연안에 나타난 ‘조스’를 물리치고 시민을 보호했던 것은 대통령도, 주지사도 아니었다. 공화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니었다. 상어잡이를 전문으로 하는 상어 사냥꾼도 아니고 표를 의식해서 정치적 주판알만 튕기는 의원들은 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저마다 고자대감적 발상으로 우왕좌왕하다가 더욱 시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었을 뿐이다. 시민을 조스에서 보호했던 것은 고향마을을 사랑하고 시민을 진정으로 아꼈던 보안관의 열정과 사랑이었다.[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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