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지난 13일 새벽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동성애자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최소 49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가 멀다 않고 발생하는 총기 사고로 웬만한 사고에는 어느 정도 무덤덤해진 미국인들도 이번 사고에 큰 충격을 받았다. 49명이란 최대의 인명피해를 낳은 것도 그렇지만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선동에 자극받은 자생적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 공격 공포가 확산되면서 언젠가 자신도 희생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15일 최악의 총기 난사 테러로 슬픔에 빠진 올랜도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미국 총기 테러는 독특한 질병… 주로 개인적 동기서 비롯

총기를 이용한 대량살상 테러는 미국의 독특한 질병이라 할 수 있다. 테러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은 물론 아니다. 유럽에서는 대규모 난민 유입과 유럽 사회와 문화에 융합되지 못하는 이들의 이질적인 문화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에서 보듯 미국의 테러는 특정 짓기 어려운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테러가 종교에 의해 촉발되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이유 등 소외감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권위적 지도자들이 인기를 얻고 국수주의적 단체들이 늘어나면서 이민자나 동성애자, 기타소수자들을 자신들의 좌절에 대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증오 선동(hatemongering)이 전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소외된 백인 저소득층을 향해 이러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 직후 자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증오가 현 세상에서 주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올랜도 총기 참사’에 대한 애도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건물에 ‘혐오 중단(STOP THE HATE)’이라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올랜도 테러 개인 동기 논란… 분명한 것은 ‘증오 범죄’

총기 난사 사고의 정확한 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은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번 테러의 성격을 규정지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위해 ‘문화 충돌’이나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말들을 들먹이고 있다.

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강력한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총기 규제 강화를 새로운 어젠다로 만들려 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대로 IS의 테러 선동과 이에 자극받아 테러 공격에 나서는 미국 내 자생적 테러주의자들이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고 누구나 쉽게 총기를 보유할 수 있는 미국의 허술한 총기 규제가 테러를 부르는 요인의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랜도 테러 등 미국에서 테러가 왜 끊임없이 발생하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올랜도 총기 난사범 오마르 마틴(29)은 부모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이고 범행 직전 911에 전화를 걸어 IS에 충성을 서약했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범인의 삶에서 IS와의 연계를 보여줄 어떤 확실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범인의 부친 시디크는 아들 마틴이 동성애 남성 두 명이 거리에서 키스하는 것을 보고 극도로 분노했다고 말해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가 범행의 동기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범인이 수년 간 범행 현장인 동성애자 클럽을 드나들었고 동성애자들이 만남을 위해 사용하는 앱도 즐겨 찾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범행 동기는 계속 오리무중으로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갈등 조장, 소수자 혐오 등 미국병과 총기 규제 미비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픽사베이

갈등 조장·소수자 혐오 등 미국병과 총기 규제 미비점 재검토해야

범행 동기가 무엇이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테러 공격은 국제 테러단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 내 테러이자 증오범죄라는 점이다. 범행 동기가 미국 문화 내에서 조장된 것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이번 테러 역시 미국병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화합 대신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미국 정치의 유해성, 남성 위주와 LGBT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 미국 문화가 안고 있는 유독성, 총기 규제 정책의 미비를 보완할 방안 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대량 살상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사전에 발각되지만 않으면 누구나 치명적인 공격 무기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도 고쳐야만 할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무엇 때문에 공격용 무기를 필요로 하는가? 공격용 무기는 전쟁터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CNN에 따르면 테러를 저지를 의심이 있어 감시 대상에 오른 인물들이 총기 구입을 시도할 때 91%가 아무 제약 없이 신원조회를 통과했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약 3만3000명에 이른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하면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 내 자생적 테러 의심자는 약 1000명 정도이다.

잔인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 IS의 공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내야만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위협을 제거하려는 것은 또다른 위협을 유발할 수 있다. 일방적인 행동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신중해야만 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의미없는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픽사베이

증오에서 비롯된 의미 없는 개인 폭력…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

무슬림이라고 모두 폭력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대부분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무슬림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세뇌를 통해 과격화하지만 이는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이처럼 과격화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합군의 공세에 조금씩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IS는 전 세계의 외로운 늑대들의 테러를 선동하면서 실제로 IS와 관계가 없더라도 누구나 IS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IS는 약화되는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외로운 늑대들의 활동 증가는 전 세계를 더 큰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마틴의 범행 동기가 정확하게 밝혀질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번 공격이 개인적 결정에 의한 개인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좌절과 박탈감 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개인적 테러 공격은 이유를 알기도 어렵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테러 공격에서 안전한가? 개인의 총기 소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덕분에 상대적으로 총기 사고 피해는 적지만 한국 역시 의미없는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대립과 갈등 대신 화합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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